의료 인공지능(AI) 회사 루닛(328130)의 2대 주주이자 전략적 투자자였던 미국 가던트헬스(Guardant Health)가 작년 말 루닛 보유 지분 전량을 매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루닛은 가던트헬스의 이번 매각 사실을 몰랐다는 입장이다.
31일 가던트헬스에 따르면, 이 회사는 보유한 루닛 주식 약 3400만달러(약 493억원) 어치를 지난해 연말 매도했다. 다만 구체적인 매도 방식과 매수 기관은 밝히지 않았다. 가던트헬스의 최대 주주는 뱅가드그룹이다.
업계 관계자는 “가던트헬스의 루닛 보유 지분과 이번 매각 거래 금액을 따져보면, 사실상 보유 주식 전량을 다 판 것”이라고 말했다.
가던트헬스는 작년 8월에도 루닛 주식 약 40만주를 블록딜(시간 외 대량 매매) 방식으로 처분했다. 이때 지분율이 5.44%에서 3.99%로 줄었다. 당시 주식 40만주를 사들인 기관은 미국 자산운용사 브룩데일 에셋메니지먼트(Brookdale asset management)였다.
루닛 관계자는 “가던트헬스가 주식을 매각한 사실을 회사도 알지 못했다”며 “앞서 가던트헬스의 기존 지분율이 5% 아래로 내려가면서 지분 변동 공시 의무가 없어져 이번 추가 매도분에 대해 별도로 공시되지 않았다”고 회사 입장을 밝혔다.
루닛과 가던트헬스는 함께 협업해 AI 병리분석 제품 ‘가던트360 티슈넥스트(Guardant360 TissueNext)’를 시장에 출시하기도 했다.
가던트헬스의 이번 주식 매각 배경에 대해 루닛 측은 “3년 이상 루닛의 장기 투자자로 활동해 온 가던트헬스의 자체적인 투자 포트폴리오 재조정과 핵심 사업 지속 성장을 위한 자원 배분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양사는 지분 매각과 무관하게 기존의 사업적 협력관계는 지속 유지하고 있고, 현재 진행 중인 협력 프로젝트도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가던트헬스의 루닛 주식 전량 처분은 지난해 연말 루닛 임원들의 블록딜과 관련이 있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루닛 임원 6명과 주요 주주 1인 등 7명은 보유한 일부 주식을 지난 12월 18일 장이 열리기 전 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했다. 매각된 주식은 38만334주로 미국계 롱펀드 운용사가 사들였다. 당시 루닛이 올린 공시를 보면 박현성 상무이사, 이정인 이사, 박승균 상무이사, 유동근 상무이사, 팽경현 상무이사 등은 각각 보통주 6만4156주를 7만7934원에 팔았다. 1인당 매도 금액을 계산하면 49억9993만3704원이다.
이에 주식 시장에선 작년 7월부터 시행된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를 피하고자 ‘꼼수’를 부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전 공시 의무가 발생하는 ‘50억원’에 아슬아슬하게 못 미치게 판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상장사 내부자의 대량 매도로 주가가 급락해 투자자가 피해를 보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지분 10% 이상 주요 주주와 회사 경영진, 전략적투자자(SI)는 지분 1% 이상 혹은 50억원 이상을 거래할 때 거래 가격과 수량·기간을 최소 30일 전에 공시해야 한다.
당시 루닛 관계자는 “회사의 대규모 자금 조달 계획에 임원과 관계자가 적극 동참한 데 따른 대출금 상환 등 개인적인 사유에 의한 것”이라며 “회사 성장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또 같은 날 루닛은 백승욱 이사회 의장과 서범석 대표이사가 총 6억원 규모의 회사 주식 7747주를 장내 매수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