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리스크(위험)와 새 행정부 출범으로 인한 시장 변동성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탄탄한 재무 상태와 친(親)기업적인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 비교적 우호적인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환경 등을 고려하면 2025년에는 헬스케어 시장이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
벤 카펜터(Ben Carpenter) JP모건 글로벌 헬스케어 투자은행(Global Healthcare Investment Banking) 공동대표는 13일(현지 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더 웨스틴 세인트 프랜시스 호텔에서 열린 제43회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이하 JPM) 개막식에서 “지정학적·정치적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2025년 경제는 연착륙하며 나아갈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JPM은 세계 최대 규모의 제약·바이오 헬스케어 투자 행사로 꼽힌다. 미국 최대 투자은행인 JP모건이 매년 1월 개최하는 새해 첫 행사인 만큼 그해 세계 시장 추세는 물론 각 기업의 주요 계획과 경영·투자 방향성 등을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JP모건에 따르면 올해는 JPM 개최 이래 최대 규모였던 지난해(614개사)보다는 적은 531개 기업이 발표 무대를 가졌다. 투자자·업계 관계자 등 총 8000명 이상이 등록했다. 기업과 기업 또는 투자자 사이 1대 1 미팅 요청은 지난해와 비슷한 3만건 이상으로 집계됐다.
현장의 참가 열기는 뜨거웠다. 이날 오전 6시 반부터 행사장 입구에는 글로벌 대형 제약사와 신흥 바이오 기업, 전문 투자자 등 세계 각국에서 온 정장 차림의 참가자들로 가득했다. 이들은 모두 개막식과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의 메인 발표가 열리는 2층 행사장으로 향했다. 행사장 안은 10명씩 앉을 수 있는 원형 테이블이 8개 배치돼 약 800명이 앉을 수 있었는데, 행사 시작과 동시에 자리가 모두 찼고, 행사장 뒤편에 서서 발표를 듣는 청중도 많았다.
◇JPM 화두 ‘트럼프 2기’… “친기업 기조 기회”
오는 20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둔 만큼, 올해 JPM은 헬스케어 분야의 정책 변화에 주목했다. 여러 글로벌 시장조사업체들도 올해 JPM의 주요 아젠다로 모두 ‘트럼프 2기 정부’를 꼽았다.
JP모건은 트럼프 당선인이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인수합병(M&A) 시장을 억눌렀던 반독점 규제 당국인 미 연방거래위원회(FTC) 리더가 교체되면서 헬스케어 규제 완화는 물론 시장 활성화를 이끌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10일 트럼프 당선인은 차기 FTC 위원장으로 앤드류 퍼거슨 현 FTC 위원을 지명했다. 이에 빅테크를 상대로 한 대대적인 ‘전쟁’을 선포해온 FTC의 기조가 내년부터 바뀔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는데, 미국 헬스케어 시장에도 긍정적 영향이 있을 것이란 해석이다.
이날 카펜터 공동대표와 함께 무대에 오른 제레미 메일맨(Jeremy Meilman) 공동대표는 “탄탄한 재무 상태, 우호적인 FTC 환경, 대체로 친기업적인 차기 행정부의 정책 기조 등은 2025년 경제에 긍정적인 신호”라며 “그동안 미국 주식 시장은 대통령의 연임 때마다 좋은 성과를 거둔 역사가 있다”고 말했다.
◇2025년 글로벌 빅파마의 공통 전략은 ‘M&A’·'R&D’
행사 첫날 메인 발표 무대에 오른 로슈, 존슨앤드존슨(J&J), 화이자 등 글로벌 빅파마(대형 제약사) 리더들은 올해 M&A와 연구개발(R&D)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위스 제약사 로슈의 테레사 그레이엄(Teresa Graham) 최고경영자(CEO)는 “로슈의 올해 성장 전략은 신약 개발의 전문성과 R&D 우수성”이라며 “앞으로 면역종양학 분야에서의 M&A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로슈는 지난 2년간 M&A를 통해 ADC(항체-약물접합체)를 비롯한 항암 치료 물질과 CAR-T 치료제 개발사인 포세이다 테라퓨틱스(Poseida Therapeutics)를 인수했다”며 “앞으로 면역·종양학 분야에서의 M&A와 R&D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슈는 사내 설립한 ‘원 에셋 팀(One Asset Team)’이 로슈의 R&D 역량을 키워왔다.
앨버트 불라(Albert Bourla) 화이자 CEO도 R&D를 강조했다. 그는 “현재 화이자는 R&D에 약 100억 달러에 가까운 금액을 투자하고 있지만, 이는 전체 매출의 18%로 산업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라며 “올해는 R&D 투자 규모를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J&J는 미국의 중추신경계(CNS) 질환 전문 제약사 인트라 셀룰러 테라피스(Intra-Cellular Therapies)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인수 금액은 146억 달러(한화 21조4300억원) 규모다. J&J는 인트라 셀룰러 테라피스의 조현병·양극성 장애 관련 치료제로 승인된 경구용 치료제인 캐플리타(Caplyta)를 포트폴리오(제품군)에 추가하게 됐다. 캐플리타는 지난 2019년 1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승인받았다.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은 캐플리타가 내년에 1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발표 무대에 오른 호아킨 두아토(Joaquin Duato) J&J CEO는 “이번 인수로 캐플리타가 더 많은 신경 질환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R&D를 강화할 것”이라며 “현재 FDA는 캐플리타의 우울증 장애 치료 승인 여부를 추가 심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