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전경. /뉴스1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전경. /뉴스1

공정거래위원회가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 시높시스(Synopsys)와 앤시스(Ansys)의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했다. 두 기업이 보유한 일부 설계 자산을 매각하는 것을 전제로, 국내 반도체·전자업계의 경쟁 제한 우려를 해소하겠다는 판단이다.

공정위는 20일 시높시스가 약 350억달러(약 50조원)를 들여 앤시스의 주식 전량을 인수하는 기업결합을 심사한 결과, 시장에서 경쟁이 저해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번 기업결합은 반도체, 광학, 포토닉스(빛을 활용한 전자기기) 설계 소프트웨어(SW) 시장에서 주요 기업인 시높시스와 앤시스가 합쳐지는 사례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LG전자 등 국내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공정위는 심사 과정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전자, LX세미콘 등 국내 12개 기업의 의견을 청취했다. 기업들은 “시높시스와 앤시스가 결합해 시장 지배력을 높이면, 필수적인 설계 소프트웨어의 가격이 상승하거나 공급 조건이 불리해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국내뿐 아니라 유럽연합(EU), 영국, 미국 등 해외 경쟁당국도 이번 기업결합의 경쟁 제한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했다. 특히, ▲레지스터 전송 수준 전력 소비 분석 SW ▲광학 설계 SW ▲포토닉스 설계 SW 등 세 개 시장에서 시높시스와 앤시스가 각각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어, 기업결합 이후 경쟁사가 설 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각 시장별 시높시스 및 앤시스 점유율(%).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이에 따라 공정위는 시높시스와 앤시스가 해당 사업 부문을 매각하도록 하는 조건을 부과했다. 구체적으로, 각 시장에서 경쟁 제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해당 분야의 사업 부문 일체를 매각하고 ▲매각 이후에도 일정 기간 기술 지원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시정조치는 반도체 칩 및 광학·포토닉스 제품 설계를 위한 필수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경쟁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인공지능(AI) 반도체의 부상,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변화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의 피해를 예방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이번 시정조치의 구체적 내용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8월 공정거래법에 도입된 ‘기업결합 시정방안 제출제도’를 최초로 활용했다. 이 제도는 기업결합 당사자가 경쟁 제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시정방안을 직접 제출하고, 공정위가 이를 검토한 후 최종 시정조치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공정위는 시높시스와 앤시스가 제출한 시정방안을 바탕으로 경쟁사 및 고객사의 의견을 수렴해 일부 내용을 보완·수정한 뒤 최종적으로 자산 매각 조치를 확정했다.

공정위는 관계자는 “향후에도 공정위는 반도체 칩 시장 등에서 국내 사업자에 영향을 미치는 경쟁제한적 국제기업결합을 지속적으로 감시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