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의 번호이동 담합 행위에 대해 제재하면서 방송통신위원회와 정면충돌했다. 민간 기업을 제재하는 데 정부 부처 간 싸움이 벌어진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방통위는 이통 3사가 단말기유통법(단통법) 규제에 따른 행정을 수행한 것뿐이라며 반발했고, 공정위는 방통위의 규제가 이통 3사의 담합을 묵인하거나 방조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전원회의에서 방통위 담당자가 “독립 규제기관 담당자로서 모욕감을 느낀다”고 발언하며 두 기관 간의 갈등이 격화됐다. 공정위 심사관은 “7회에 걸친 (부처 간) 업무회의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말에 방통위가 입장을 번복했다”며 맞섰다.
정부 내 두 규제기관이 동일한 사안을 두고 정반대의 해석을 내놓으면서, 정책 혼선과 규제 신뢰도 하락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 공정위 “이통 3사, 7년간 시장 통제해”
공정위는 이통 3사가 2015년부터 2022년까지 7년간 번호이동 시장에서 특정 사업자의 가입자 쏠림이 발생하지 않도록 상호 조정하며 경쟁을 제한했다고 판단했다.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판매장려금 지급 방식을 조정했고, 이로 인해 이동통신 시장 내 가입자 유치 경쟁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것이다.
공정위 심사관 측이 전원회의에서 공개한 내부 대화에 따르면 2015년 3월 KT 관계자는 “양사에 불만이 있는 건 사실이며, 지난주 순감을 당했으니 이번 주만큼은 타사에서 KT에 양보해 주길 바라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같은 시기 SK텔레콤 관계자는 “순감 이슈가 있어 리베이트를 확대해 순증을 하고 싶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2016년 7월 SK텔레콤 관계자는 “솔선수범합니다. 순감인데도…”라고 말했다. 이에 KT 관계자는 “네, 전 이대로 가봐야겠습니다. 많이 안 좋네요”라고 답했다. 이는 공정위가 확보한 ‘상황반 단체 대화방’ 기록에서 나온 발언이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2022년 4월 통신협회 관계자를 향해 “이거 정책도 안 썼는데 순증이라 난감하네요. 오늘도 기본만 하고 갈 거예요”라며, “순증보다는 타사 자극 안 하려고 빼고 가는 거로 봐주시면 되겠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이를 이통 3사가 시장 점유율을 인위적으로 조정하기 위해 서로 담합한 증거로 봤다.
◇ 방통위 “정부 규제 따랐을 뿐… 담합으로 볼 수 없어”
통신사들의 이런 논의에 대해 방통위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방통위는 이통3사가 방통위의 규제 지침에 따라 판매장려금을 조정한 것일 뿐, 담합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방통위는 시장상황반 운영이 보조금 지급 과열을 막기 위한 조치였으며 이통3사는 정부의 규제를 준수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방통위 관계자는 “이통3사가 방통위법 집행을 따르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며 “규제를 이행하지 않는 사업자에는 벌점, 경고, 실태점검, 영업정지, 과징금, 형사고발 등 강력한 제재를 부과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방통위는 과거 차별적 장려금 지급 등의 이유로 이통3사에 총 32회, 누적 146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으며, 형사고발과 영업정지 처분까지 내린 바 있다. 방통위는 이러한 강력한 규제 환경에서 이통3사가 담합을 할 유인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어 방통위 관계자는 “심사보고서에 적시된 20개 행위 중 방통위 지시를 벗어나는 내용은 한 건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통3사와 방통위의 이해관계가 같다고 주장하는 것은 유감스럽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공정위와 방통위 간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공정위는 이통3사가 방통위 행정지도를 이용하려고 했다고 꼬집기도 했다.
심사관 측이 공개한 내부 대화에 따르면, SK텔레콤 관계자는 “제일 안 좋은 시나리오는 담합 이슈가 커지면서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 사업이 중단되고, 방통위 행정지도가 약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이통3사가 방통위의 행정지도를 활용해 시장을 조정하면서도, 공정위 조사를 우려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라고 공정위는 판단했다.
반면 방통위는 “공정위가 단통법 규제를 과잉 해석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공정위가 방통위의 법 집행을 담합으로 간주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이통3사도 방통위의 단통법 규제를 따르면서도 각자의 시장 경쟁력을 유지하려 했을 뿐, 담합을 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 이통3사 담합, 결국 소비자 피해로 이어져
이통 3사의 담합이 지속되면서 이동통신 시장에서의 경쟁이 현저히 제한되었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이통3사의 일평균 번호이동 순증감 변동폭은 담합 이전인 2014년에는 약 3000건에 달했지만, 2016년 이후엔 약 200건 이내로 줄었다. 또한, 일평균 번호이동 총건수도 2014년 2만 8872건에서 2022년 7210건으로 75% 감소했다.
번호이동 시장이 제한되면서 소비자들은 보다 저렴한 요금제를 선택할 기회를 잃게 됐다는 것이 공정위의 판단이다. 이동통신 3사는 신규 가입자 유치를 위한 혜택 제공을 줄였고, 소비자들은 더 높은 가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결과적으로, 이동통신 시장의 경쟁이 약화되면서 가계 통신비 부담이 증가한 셈이다.
결국 공정위는 이동통신 3사의 담합 행위가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경쟁 제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과징금 부과와 함께 시정명령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이통3사에 부과된 과징금은 SK텔레콤이 426억원, KT가 330억원, LG유플러스가 383억원이다. 당초 최대 5조5000억원까지 과징금이 부과될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감경 조정을 거쳐 최종 1140억원 수준으로 결정됐다.
이통사 담합 제재를 두고 경쟁당국과 주무부처 간의 정책이 엇박자를 내면서, 이중규제 논란이 불거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건은 방통위의 규제나 지시사항을 벗어난 담합에만 제재를 한 것”이라며 “정부의 행정지도가 개입된 담합이라 해도, 경쟁 제한을 정당화할 법적 근거가 없다면 공정거래법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단통법에는 경쟁 예외에 관한 규정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방통위 규제를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담합이 면죄될 수는 없다는 취지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정위와 방통위 간 충돌은 수십 년간 반복돼 온 문제”라며 “행정지도에 따른 담합이라고 해서 공정거래법 적용이 배제된다는 판례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핵심은 방통위의 행정지도가 이통3사의 담합을 직접 유도했느냐의 여부”라며 “규제기관이라 해도 경쟁을 제한하는 방식의 행정지도는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통3사도 공정위의 판단에 반발하며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SK텔레콤은 “공정위의 이번 결정에 유감이다. 단통법 집행에 따랐을 뿐, 담합은 없었다”며 “의결서를 받은 후 법적 대응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LG유플러스는 “이통 3사는 방통위의 규제하에서 따랐고 경쟁사와 별도 합의한 적이 없다”며 “규제기관 간 충돌로 인해 불합리한 제재 처분을 받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KT 역시 “공정위 의결서를 수령한 후 법적 조치를 포함한 다양한 대응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