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왼쪽)과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오른쪽). /뉴스1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왼쪽)과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오른쪽). /뉴스1

금융감독원이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부당대출 규모가 730억원이라고 발표하며 지주 차원의 내부통제가 식물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직접 우리금융 경영진의 책임을 시사한 가운데 법원의 한 판례가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의 책임을 몰아붙이는 근거로 작용할 전망이다. 더욱이 이 판례는 손 전 회장의 소송에서 비롯된 만큼 전 회장의 손을 들어준 법원 판결이 현 회장 목에 씌우는 칼(枷)이 될지 주목된다.

이 원장은 4일 오전 금감원에서 열린 ’2024년 금융지주·은행 주요 검사 결과 설명회’에 참석해 금감원이 지난해 실시한 KB·우리·NH금융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금감원은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손 전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규모가 총 730억원이며 이중 절반 이상인 451억원은 임 회장 임기인 2023년 3월 이후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날 이 원장은 임 회장 임기 중 발생한 부당대출 규모를 따로 명시한 이유에 대해 “(손 전 회장이) 현직 회장으로 있을 때만 벌어진 일이 아니다”며 “내부통제를 못한 모든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 현황. 손 전 회장(前 경영진) 임기 때보다 임종룡 회장(現 경영진) 임기 때 발생한 대출 규모가 더 크다. /금융감독원 제공

◇ 손태승 승소 판결이 임종룡 압박 근거로

이 원장의 발언과 금감원의 발표는 임 회장에게 내부통제 실패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금감원은 우리금융 검사 자료에 “지주 차원의 내부통제가 실효성 있게 작동하지 않았다”고 적시했다. 금감원이 언급한 ‘내부통제 실효성’은 지주 회장의 책임을 따질 수 있는 주요 근거다. 이 내부통제 실효성을 판가름하는 구체적 기준은 법원의 판결로 정립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판결은 손 전 회장과 금감원 사이 소송 끝에 나왔다.

2022년 12월, 대법원은 손 전 회장에 대한 금감원의 문책 경고 징계 취소를 확정했다. 금감원은 앞서 손 전 회장에게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판매 사태의 책임이 있다며 손 전 회장(당시 우리은행장)에게 문책성 경고를 내렸다. 금감원은 손 전 회장이 은행장으로서 ‘내부통제 준수 의무’를 저버렸다고 봤다. 그러나 법원은 “금감원이 제재를 내릴 때 ‘내부통제 준수 의무’를 규정한 법적 근거가 없었다”며 금감원이 법리를 오해해 잘못 처분을 내렸다고 판단했다.

법원이 제시한 금융사 내부통제 마련 의무를 판가름 기준 중 하나인 금융사지배구조 감독규정 별표2의 15조. 금융지주사와 자회사 사이 내부통제 지휘·보고체계를 설정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법원은 이 조항을 비롯한 기준들이 충족된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를 마련해야 내부통제 의무를 지킨 것이라는 판례를 남겼다. /법원 판결문 갈무리

손 전 회장의 손을 들어준 이 판결은 후에 임 회장의 책임을 따질 근거를 남겼다. 당시 법원은 ‘내부통제 마련 의무’에 대해선 법적 근거가 있다며 부가설명을 곁들였다. 법원은 금융사가 실제 내부통제 효과를 발휘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내부통제 마련 의무를 지킨 것이라고 판시했다. 더 나아가 이 실효성을 판가름할 수 있는 기준을 판결문에 제시했다.

법원이 판결문에 제시한 기준 중엔 금융사지배구조 감독규정 별표2의 15조가 있다. 해당 조항은 “지주사는 지주와 자회사 사이 준법감시업무 지휘·보고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규정한다. 즉, 법원 해석에 따르면 지주는 은행의 내부통제 관련 지휘체계도 마련해야 하며 이 체계가 제대로 작동해야 내부통제 의무를 다한 것이다.

4일 오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연합뉴스

◇ 우리금융 내부통제 지휘·보고체계 먹통

법원의 해석과 금감원의 평가를 종합하면, 우리금융은 우리은행 내 부당대출 발생을 인지한 시점부터 위법 가능성을 따지고 재발 방지 노력에 매진해야 했다. 우리은행 여신감리부서가 처음으로 손 전 회장 친인척 대출 사실을 인지한 시점은 2023년 9월. 우리금융지주 경영진이 이러한 사실을 보고 받은 시점은 지난해 3월. 6개월 가까이 보고가 지연됐다. 지주 경영진의 보고 이후인 지난해 7월에도 부당대출이 발생하는 등 재발 방지도 실패했다.

게다가 감독규정상 이 조항은 지주 회장의 책임까지 물을 수 있다. 해당 조항은 지휘·보고체계 의무의 주체를 지주라고 표현한다. 감독규정에 특정 직책을 표기하지 않고 회사를 의무 주체로 명시한 경우엔 법인뿐만 아니라 최고경영자에도 최종 책임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 전공 교수는 “사실상 우리금융의 내부통제 지휘·보고체계가 먹통이었다”며 “임 회장이 어떤 징계를 받는다 섣불리 예단할 순 없지만 금감원이 책임을 따지는 명분을 확보한 셈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금감원은 이번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제재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현재 검사 후 절차를 밟고 있어서 임 회장의 책임 규명 및 제재 여부 관련해선 지금 답하긴 곤란하다”면서도 “누구에게 (내부통제) 책임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