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건설공사 현장의 불법 하도급 근절을 위해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AI를 활용해 매년 수십만 건이 동시에 계약이 이뤄지고 공사가 진행되는 건설 현장의 불법 하도급 현황을 감시하고 단속하겠다는 것이다. 건설산업기본법에선 하도급업체가 다시 하도급을 주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다수의 건설 현장에선 이런 불법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국토부는 AI를 활용해 불법 하도급 의심업체를 추적할 수 있는 분석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연구용역을 진행할 계획이다.
2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국토부 건설현장준법감시팀은 ‘AI 활용 건설공사 불법 하도급 근절방안 연구’를 입찰 공고하고 오는 28일부터 4월 1일까지 지원자를 접수한다. 이번 연구는 2014년부터 국토부가 운영하는 조기 경보시스템을 AI를 활용해 강화하기 위한 시도다.
국토부는 건설산업기본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하도급업체의 재하도급을 감시하기 위해 키스콘(KISCON)이라고 불리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1억원 이상 도급 공사를 계약할 때 도급 계약일 30일 이내에 ▲공사명 ▲소재지 주소 ▲공사 종류 ▲도급방법 ▲계약 입찰방법 ▲도급 금액 등을 ‘건설산업종합정보망’에 입력하도록 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연간 평균 17만개의 공사현장에 대한 정보가 이 시스템에 담겨 있다. 공사현장 한곳에서도 수건 이상의 재하도급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정부가 관리·감독해야 할 데이터는 수십만 건 이상으로 늘어난다.
정부가 재하도급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AI까지 동원하겠다고 나선 이유 중 하나는 지난 2021년 광주 동구 학동에서 발생한 철거건물 붕괴사고다. ‘광주 54번 버스 참사’라고도 불리는 이 사고는 2021년 6월 9일 학동4구역 재개발을 위해 동구 남문로 717 학산빌딩을 철거하던 중 바로 옆 학동·증심사입구역 시내버스 정류장에 정차해 있던 운림54번 버스로 철거 건물이 무너져 내리면서 발생했다.
버스가 매몰돼 17명의 사상자(사망 9명·부상 8명)가 나왔다. 정부 합동 조사위원회 조사결과에 따르면 철거가 부실하게 이뤄졌던 이유는 하도급업체가 다시 또 다른 하도급업체에 재하도급을 주는 식으로 다단계 하도급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철거·시공을 맡은 도급 원청업체는 HDC현대산업개발이었지만 한솔기업, 백솔기업, 아산산업개발 등으로 다단계 도급 계약이 이뤄졌다. 4차례에 걸친 하도급 계약이 체결되며 중간 계약마다 수수료를 받았고 철거비는 기존 3.3㎡ 당 28만원에서 4만원으로 낮아졌다.
국토부는 이런 참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불법 현장을 근절하기 위해 AI의 머신러닝(ML·Machine Learning)을 활용할 계획이다. 머신러닝은 컴퓨터가 경험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분야다.
조숙현 국토부 건설현장준법감시팀장은 “지금은 공사 도급 계약에 대한 불법성 여부를 살펴보기 위해 일일이 관련 인력들이 정보를 대조하고 있지만 이를 AI에 학습시키면 불법 하도급 계약이 발생할 가능성이 큰 현장을 솎아내 효율성이 커진다”며 “이를 근거로 이용해 현장 단속과 연계해 불법 하도급을 근절하겠다는 게 정부의 의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