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규제 강화로 부동산 시장이 조정 국면에 들어서면서 열풍이 불었던 청약 시장도 다소 시들해진 모습이다. 서울에서는 경쟁률이 한자릿수로 떨어졌고, 인천·경기 등 수도권 지역에서는 미분양까지 발생하고 있다. 시장의 조짐이 심상치 않자, 일부 시행사는 부동산 불황기에 등장하는 중도금 대출 ‘자체보증’ 카드까지 꺼내고 있다.

11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지난 9일 1순위 청약(해당지역)을 시작으로 오는 11일까지 청약을 실시하는 대구 만촌 자이르네는 시행사가 자체보증을 통해 중도금 30%를 무이자로 대출해주기로 했다. 이 단지는 분양가가 10억4100만~11억5000만원(전용면적 77~84㎡)으로 형성돼 주택도시보증공사(HUG)나 한국주택금융공사(HF)를 통한 중도금 대출이 불가능한데, 시행사가 직접 보증에 나서면서 대출이 가능해졌다.

서울 63스퀘어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만촌 자이르네가 추가 혜택을 내세운 것은 대구에 미분양이 속출하고, 달서 SK뷰·달서 푸르지오 시그니처·힐스테이트 앞산 센트럴 등 대형 건설사들의 아파트도 미분양이 해소되지 않은 시장 환경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시행사의 이런 노력에도 9일 실시된 1순위 청약(해당지역)에서는 모든 타입(78·85A·85B)에서 미달이 발생해 10~11일 진행되는 1순위(기타지역)·2순위 청약 결과가 중요해졌다.

한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중도금 대출은 2010년 전국적으로 미분양이 속출했을 당시 시행사들이 많이 썼던 방식”이라면서 “통상 시행사의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사례가 드물지만, 대구의 경우 현재 전국에서 미분양 주택이 가장 많고 미분양 증가세도 가파르게 때문에 시행사들이 자체보증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최근 미분양 사례는 대구뿐 아니라 서울·인천 등 수도권 지역에서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작년 말부터 시작된 전국적인 대출규제로 대출 문턱이 높아지자 수도권 청약시장 열기도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송도에서는 분양가가 9억원을 넘겼던 ‘송도자이 더 스타’와 ‘송도 럭스오션 SK뷰’가 각각 작년11월, 올 1월 입주자 모집공고를 내고 청약을 실시했는데 모두 정계약에서 미계약이 발생했다. 올 1월 입주자를 모집했던 주상복합 단지인 칸타빌 수유팰리스도 일부 타입(전용 66·76·78)의 분양가가 9억원을 넘겼는데, 여전히 미계약분이 소진되지 않고 있다.

이런 탓에 서울에서도 분양가가 높은 단지는 시행사 자체보증을 통해 중도금 대출을 알선하고 있다. 지난달 청약을 진행한 한화포레나미아가 그 사례다. 이 단지는 분양가 9억원이 넘는 일부 타입(전용 74·80·84㎡)에 대해 자체보증으로 중도금 대출을 알선하기로 하고, 분양가에서 9억원까지는 40%, 9억원 초과분은 20%까지 대출을 허용했다. 이런 혜택에도 평균 경쟁률은 한 자릿수를 기록하며 서울 치고는 낮았지만, 1순위 마감에는 성공했다.

올해 서울에서 첫 분양하는 아파트로 관심을 모았던 강북구 ‘북서울자이 폴라리스’도 중도금 대출 자체보증을 실시했다. 전용 38~112㎡로 구성된 이 단지는 84·112㎡ 타입 분양가가 9억원을 넘어 HUG를 통한 중도금 대출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시공사가 해당 타입에 대해 자체보증으로 중도금 대출을 알선하기로 하면서 1순위 청약 경쟁률 34.43대1을 기록했고 완판에 성공했다.

최근에는 비규제지역의 분양가 9억 이하 아파트에 대해서도 시행사가 중도금을 자체보증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집이 있어 추가로 중도금 대출을 받을 수 없는 다주택자들도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일례로 내년 2월 입주하는 더샵 양평 리버포레는 지난 1월 시행사 자체 보증을 결정했고, 내년 7월 입주하는 동해자이도 자체 보증을 약속하면서 다주택자들도 청약에 나설 수 있었다.

현재 HUG나 HF를 통한 중도금 대출은 규제지역의 경우 세대 당 1건, 비규제지역의 2건만 가능해 중도금 대출을 이미 받은 세대의 경우 추가 대출이 제한된다. 그러나 시행사 자체보증을 통해 중도금 대출을 받으면 이미 집이 있는 유주택자도 대출 규제를 피할 수 있어 청약 신청이 가능하다.

또 다른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최근 집값 상승세가 주춤하고, 대출규제로 인해 청약 시장의 경쟁률도 예전과 같지 않자 자체보증까지 내놓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체감상 전체 분양 단지의 10% 정도가 자체보증에 나서는 추세”라면서 “다만 이는 대출규제로 인한 것으로, 2010년에 발생했던 부동산 시장 불황과는 상황이 다르다. 정부 규제가 완화돼 집단대출이 자유롭게 나온다면 이런 추세가 다시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