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저녁 서울 이태원. 일요일이었는데도 술집들은 대부분 만석이었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에서부터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사람들의 긴 줄이 늘어졌다. 인근 상인들은 금요일과 토요일엔 인파가 이보다 2배 많다고 했다. 폐점한 채 방치됐던 건물들은 다시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비싼 대로변을 제외하면 상가가 거의 다 찼다”며 “지난달부터 이틀에 1건꼴로 상가 임대나 매매 문의가 오는데 공실이 없어서 임차인들이 못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난 10일 밤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 /김윤수 기자
지난 10일 밤 이태원 거리. /김윤수 기자

# 명동은 여전히 썰렁했다. 지난 8일 금요일 저녁이었는데도 길거리엔 인적이 드물었고 상가들은 불이 꺼져 골목 전체가 어두컴컴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로는 지난해 4분기 기준 명동 상가 2곳 중 1곳이 문을 닫은 상태인데, 상인들은 체감상 올해 들어 공실이 더 늘어난 것 같다고 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여전히 상가 임대 문의는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 8일 명동 거리. /김윤수 기자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던 이태원과 명동 상권의 희비가 갈리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 수가 급감하면서 1년 전 이맘때 두 상권의 상가 공실률은 전국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상가 공실률은 명동이 중대형과 소형 각각 38.4%, 38.3%, 이태원이 22.6%, 31.9%였다. 같은 해 4분기 외국인 관광객 수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 가운데, 명동은 중대형 50.1%, 소형 50.3%로 공실률이 더 높아진 반면 이태원은 중대형 9.4%, 소형 5.9%로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그래픽=이은현
이태원 지도. 세부적으로 빨간 영역은 세계음식거리, 파란 영역은 이태원퀴논길 상권을 형성한다. /네이버지도 캡처

지난 10일 기자가 만나본 이태원 공인중개업소와 상인들은 올해 들어 공실이 더 줄고 상권 회복이 빨라진 걸 체감한다고 입을 모았다. 임대료는 코로나19 발생 직전 66㎡(20평) 면적 기준 월 500만원에서 최저 200만원대로 낮아진 와중에 유동인구는 늘면서, 상가 임대 수요가 커진 덕이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는 임차인들의 움직임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있었다”며 “먼저 회복을 시작한 세계음식거리에 이어, 대로 맞은편 이태원퀴논길도 올해 들어 상가 임대 수요가 부쩍 늘었다”고 했다.

실제로 공실들은 개업을 준비 중이었다. 세계음식거리엔 3층짜리 건물이 인테리어 작업에 한창이었다. 인근 상인들에 따르면 각 층이 와인바를 운영하다가 지난해 차례로 폐업한 건물인데, 이번에 한 사업자가 3개 층을 모두 임대해 3개월 뒤 새로운 와인바를 열 예정이라고 한다. 퀴논길의 빈 건물 하나도 이달 말 식당 개업을 위해 인부들이 인테리어 작업 중이었다.

개업을 위해 인테리어 작업 중이라는 이태원 거리의 한 상가 공실. /김윤수 기자

세계음식거리의 술집 베이비기네스에서 일하는 이모씨는 “지난 겨울과 비교해도 손님 수가 확실히 늘었다”며 “일이 없어 지난해 내내 쉬었는데 올해 1월부터 다시 출근하고 있다. 주방직원과 홀직원이 따로 있는데도 일손이 모자라서 사장까지 뛰고 있다”고 했다. 퀴논길의 음식점 버들골이야기를 운영하는 문모씨는 “코로나19 직전의 80% 정도로 손님 수가 회복된 것 같다”며 “인건비를 아끼려고 직원 2명도 모두 잘랐는데 최근 일손이 부족해져서 아들이 일을 돕고 있다”고 했다.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0년대생) 사이에 입소문을 탄 명소들도 있다. 이날 낮 인근 술집들이 문을 열기 전부터 한 사주가게 앞엔 20대로 보이는 여성 손님 10여명이 점을 보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줄에 서있던 신모씨는 “저렴하면서 점을 잘 맞추는 걸로 유명하다고 들어서 와봤다”며 “대기시간이 길다고 해 아예 끝나고 저녁까지 즐기고 갈 생각”이라고 했다.

인근 술집이 문을 열기 전부터 이태원을 찾은 젊은 손님들. 한 손님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입소문이 난 사주가게를 찾아와 줄을 서고 있다고 했다. /김윤수 기자

이태원의 활기는 명동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중심가(명동8길)를 따라 일부 화장품 가게와 음식점, 노점상이 문을 열었지만 주고객인 외국인 관광객이 없다보니 개점휴업 상태나 다름없었다. 상인들은 “놀 수 없어 마지 못해 나왔다”고 입을 모았다. 중심가를 벗어나 골목들로 들어가면 상가 대부분이 폐업하고 간판 1개 정도만이 가로등처럼 밤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지난 8일 저녁 명동 거리. /김윤수 기자

전문가들은 이태원과 달리 명동은 주변 주거지 등 배후수요가 없고 내국인보단 외국인 관광객에 서비스가 맞춰져 있어, 코로나19 거리두기 해제로는 상권 회복이 쉽지 않을 걸로 내다봤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명동은 배후수요가 취약하기 때문에 외부 유동인구(외국인 관광객) 유입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전엔 이태원 등 다른 상권과 회복 시간에 차이를 보일 것”이라고 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명동은 임대료가 높아 화장품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가 들어와야지, 자영업자가 접근할 수 있는 상권이 아니다”며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하다 보니 객단가도 높아 내국인에겐 소외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같은 이유로 이태원에 대해선 긍정적 전망을 내놨다. 박 교수는 “이태원은 용산 한남뉴타운, 동부이촌동 개발로 배후수요가 지속적으로 강화할 상권이다”며 “중장기적으로는 국제업무지구 개발, 주한미국대사관 이전으로 글로벌시티화(化)하면 외국인 유입도 늘어 코로나19로 인한 손실 이상으로 상권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