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철강·자동차에 25% 관세 부과를 예고하고 다음 달 2일엔 세계 무역 질서에 격변을 불러일으킬 상호관세 부과를 앞둔 가운데, 우리 정부도 대미 협상에 집중하고 있다. 정부는 가급적 경쟁국과 비교해 낮은 관세율을 적용받아 미국 시장에서 ‘상대적인’ 우위를 확보하는 것을 현실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30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상대적으로 낮은 상호관세를 적용받는 것을 목표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다만 최종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하는 것이어서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다.
◇ 정부 “상호관세 면제는 불가… 관세율 최대한 낮춰보자”
당초 정부는 우리나라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예외적 국가로 거의 전 품목에 걸쳐 관세가 없다는 점에서 ‘상호관세 예외’를 적용받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미국은 비관세 장벽, 세제 환경, 환율, 정책 등 전반적인 요인을 고려해 각국에 상응하는 상호관세를 매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에도 무역수지 불균형에 관한 불만을 드러낸 가운데 농산물·디지털 규제 등 구체적 비관세 장벽 해소 문제도 거론해 상호관세 부과 명분 쌓기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정 적자 완화와 감세를 위한 ‘대체 세원 확보’ 차원에서 관세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점도, 트럼프 신정부가 상호관세를 단순 협상 카드로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협상에 나섰던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19일 공개 강연에서 이런 미국 기류를 전하며 “다가올 충격파에 대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그는 한국 등 주요 20개국(G20)이 상호관세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미국이 대충 하다가 넘어가겠지’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고 경고했다.
상호관세 면제가 어렵다면 정부는 적용 관세율을 낮추는 데 주력해 유럽연합(EU)·일본 등 주요 경쟁국 대비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는 쪽으로 막판까지 대미 협상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안덕근 산업부 장관과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 등 고위 당국자들의 연쇄 방미를 통해 최대한 ‘우호적 대우’를 받기 위해 노력을 벌여왔다. 산업부 당국자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상호관세와 관련해 우호적 대우를 해 줄 것에 (협상력을) 집중하고 있다”며 “우리 주요 경쟁국이 (상호관세율을) 얼마 맞는지가 미국에서의 경쟁 차원서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수입 자동차에 25% 품목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 10%, EU에 20%의 상호관세가 각각 매겨진다고 가정하면, 한국산 자동차에는 35%, 유럽산 자동차는 45%의 관세가 붙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한국산 자동차가 미국 시장에서 미국산과 가격 경쟁에서는 불리해지지만, 적어도 유럽산보다는 상대적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정부도 이를 노리는 것이다.
◇ “韓, 상대적 관심 밖” 다행… 美, 4월 2일 후 개별국 협상 여지
한국의 입장에서 기대되는 부분은 트럼프 대통령의 ‘초점’이 주로 유럽연합(EU)·캐나다·멕시코 등에 맞춰있다는 점이다. 한국·일본 등 동아시아 동맹국은 상대적으로 거의 ‘호명’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는 미국을 갈취하려 탄생했다”고 힐난할 정도로 EU에 특히 적대적 태도를 보였다. 마로시 셰프초비치 유럽연합(EU) 무역·경제안보 담당 집행위원은 최근 미국이 EU 모든 국가에 20%의 상호관세를 부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 내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4배 관세율’ 등 미국 측 오해를 상당 부분 풀었고, 조선·가스 등 한국의 몸값을 높일 수 있는 협력 요인을 지렛대 삼아 협상을 진행해 왔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관세율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다만 4월 2일 각국이 각각 ‘상호관세 성적표’를 받아도 이는 시작에 불과할 뿐 이후 마라톤식의 장기 협상 국면이 펼쳐질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상호관세와 품목별 관세 완화 또는 면제를 위한 트럼프 신정부와의 협상 과정에서는 무역 불균형 해소 방안을 포함해 미국 측의 다양한 관심사를 얼마나 만족시킬 수 있느냐에 성과가 달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이 중국과의 신냉전 와중에 사활을 거는 조선 산업 재건 협력, 알래스카 LNG 개발 참여를 포함한 에너지 구매 확대,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에너지 산업 협력 등이 장기적으로 한국의 대미 협상 지렛대가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최근 현대차그룹이 트럼프 대통령의 환대 속에서 210억달러(약 31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대한항공도 327억달러(48조원) 규모의 미국산 여객기·엔진 구매 계획을 밝힌 것처럼 한국 기업들의 대규모 대미 투자와 ‘바이 아메리카’ 차원의 구매도 한국의 대미 협상력 제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인교 본부장은 “미국은 4월 2일 국가별로 상호관세를 때린 뒤 개별 국가와 협상하게 될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4월 2일 관세가 최종 관세가 아니다”라며 “조정될 여지가 있다. 우리가 어떤 패키지를 준비하느냐에 따라 관세율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