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째 이어지는 영남권 초대형 산불로 전국 곳곳에서 인명과 재산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정부는 산불재난 위기경보를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격상하고, 24시간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산림청을 중심으로 관계 부처가 총력 대응에 나섰지만, 초동 진화 실패와 야간 대응의 한계 등으로 피해가 확산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2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기준 이번 산불로 인한 전체 피해 면적은 총 1만7534헥타르(ha), 사망자는 22명으로 집계됐다.
충북 옥천, 경남 김해 산불은 완전히 진압됐고 경남 산청·하동, 경북 의성·안동, 울산 울주 온양, 울산 울주 언양에서 산불 4건이 진행 중이다. 이번 산불은 국내 산불 중 역대 세 번째로 큰 규모다.
산림청은 중앙산불사고수습본부를 가동하고, ‘심각’ 단계 재난 위기경보 체제에서 전국 단위 대응을 총괄하고 있다. 피해 지역에서는 지자체가 중심이 되어 지역 통합지원본부를 운영 중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업 분야 피해 대응을 맡고 있다. 산불 대응 단계가 ‘심각’으로 격상되면서 농식품부는 중앙산불사고수습본부 내 ‘지원상황실’을 설치해 운영 중이다. 피해 현황은 지자체와 협조해 집계하고 있고 향후 복구 지원 프로그램 마련에도 착수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는 경북 의성 지역에서 돼지 700두 폐사, 사과나무와 축사 전소 등이다. 다만 진화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아 전체 피해 규모는 아직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 25일 직접 의성 산불현장을 찾아 대응 상황을 점검하고 피해 농가와 복구 방안을 논의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화재 진압이 완료되면 지자체 조사를 바탕으로 농기자재 지원, 경영안정자금 등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통신망 복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총괄하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지난 25일 방송통신재난 위기경보를 ‘주의’ 단계로 상향하고, ‘방송통신재난대응상황실’을 24시간 운영 중이다. 울진군에서는 SK텔레콤 이동통신망이 한때 전면 중단되자, KT에 재난로밍 명령을 발동했다. 이후 SK텔레콤이 인근 회선을 통해 복구에 성공했지만, 과기정통부는 통신망 안정화를 위해 전 지역을 지속 점검하고 있다.
소방청은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해 전국 소방력을 총집결시켰고, 경찰청은 주민 대피·방범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요양병원 환자 등을 안전 지역으로 긴급 이송했으며 국토교통부는 고속도로와 철도의 운행 제한 조치를 시행 중이다. 충북, 강원 등 지자체도 산불방지대책본부를 24시간 운영하며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모두 ‘총력 대응’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번 산불을 둘러싼 정부 대응에 비판도 적지 않다. 진화 헬기의 야간 운용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고, 재난문자 전달 시기와 대피 지침의 부실 등도 도마 위에 올랐다. 실제 의성 산불의 진화율은 22일 밤 6%에서 다음날 새벽 4.8%로 떨어졌고, 피해 면적은 같은 기간 550ha에서 950ha로 급증했다.
정부는 책임을 통감하며 후속 조치를 약속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이날 오전 대국민 담화를 통해 “대응과 예방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산불 진화가 마무리되면 전반적인 대책을 점검하고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한 권한대행은 “피해자 일상 회복을 위해 긴급구호와 행정 지원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야간 산불 대응력 강화와 산림 관리 체계의 개선이 대형 산불 확산을 막는 방안이라고 지적한다. 고기연 한국산불학회장은 “강원도와 경상도 등 동쪽 지역은 매년 산불 위험이 큰 곳인데, 불법 소각 단속이나 초기 대응이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산불이 야간에 확산하지 않도록 지상에서의 진화 활동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야간에 불씨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면 다음 날 헬기 부담이 커지고, 진화 작업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강호상 서울대 산학협력교수는 “기후 변화로 대형 산불은 앞으로 더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나무를 수십 년 키우고도 수확하지 않고 방치하면, 숲 전체가 불쏘시개가 된다. 산림을 체계적으로 경영하고 방화선 역할을 할 수 있는 구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