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소수의 거점 도시를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도권 집중이 초저출산과 가계부채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면서 실효성 있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26일 서울 중구 한은 별관에서 열린 한은-통계청 공동포럼 ‘균형발전을 위한 과제, 그리고 지표를 통한 전략’ 환영사에서 “과거처럼 정책 지원을 여러지역에 분산하는 방식이 실제로 의도한 효과를 거두었는지에 대해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에서 열린 한국은행·통계청 공동포럼 '균형발전을 위한 과제, 그리고 지표를 통한 전략'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총재는 “한은은 2~6개의 거점 도시에 핵심 인프라와 자원을 집중해 수도권에 버금가는 정주 여건을 조성하자는 제안을 한 바 있다”면서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된 상황에서, 지방에 있는 작은 도시가 서울의 성장에 따른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것보다 가까이 있는 거점도시가 발전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파급효과가 훨씬 현실적”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과도한 수도권 집중이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까지 저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치열한 경쟁과 높은 주거비용이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주저하는 근본적인 원인이지만, 경제·교육·의료·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의 핵심 기능이 서울에 집중돼 있어, 청년들이 다른 선택지를 갖기 쉽지않다”고 했다.

이어 “부모들 또한 이른바 ‘인서울’ 대학이라는 목표를 위해 빚을 내서라도 높은 집값을 감당하며 사교육 환경이 좋은 지역에 거주하려고 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서울은 풍부한 일자리와 높은 소득 수준을 유지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우리경제 전체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개인의 행복이 희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통계청이 처음으로 분기별 지역내총생산(GRDP) 통계를 발표했다. 이 총재는 “지역 발전을 위한 정책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의 경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라며 “분기별 GRDP 발표가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는 데 핵심역할을 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한은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지역별 주택시가총액은 서울(2320조원), 경기(1986조원), 부산(389조원) 순으로 나타났다. 전체 시가총액 중 수도권에 67.7%가 집중됐다. 2023년 GRDP 대비 주택시가총액 배율은 세종(4.5배)이 가장 높았으며, 서울(4.2배)이 뒤를 이었다.

한편 이 총재는 이날 SBS 인기 TV프로그램 ‘나는솔로’의 출연자인 광수를 언급해 화제를 모았다. 이 총재는 “TV 프로그램에서 강원도의 한 지역에서 근무하는 의사 선생님이 출연했는데, 최근 그 지역에서 유일한 의사가 되면서 도저히 그곳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한다”면서 “의사로서의 헌신에 깊은 존경심을 느끼는 동시에, 점점 위축되는 지역경제가 개인의 사명감에만 의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