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회복의 동력으로 꼽히는 설비투자가 4년 3개월 만에 최대 감소폭을 기록하면서 한국 경제가 올해 본격적인 침체 국면에 들어선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끝이 보이지 않는 ‘건설 한파’가 전(全)산업 생산을 끌어내리는 가운데, 소비까지 부진한 흐름을 보이자 이러한 관측에 더 힘이 실리고 있다.
◇설비투자, 전월比 14.2%↓… 4년 3개월 만에 최대 감소
통계청이 4일 발표한 ‘2025년 1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1월 설비투자지수(계절조정)는 102.7로 지난해 12월보다 14.2% 감소했다. 이는 2020년 10월(-16.7%)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반도체제조용기계 등 기계류(-12.6%)와 기타운송장비(-17.5%) 등에서 투자가 모두 줄어든 영향이다.
설비투자는 기업이 생산을 위한 장비나 시설에 투자하는 자금으로, 경기 흐름을 가늠하는 주요 지표다. 주로 기업이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 1년 이상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자산을 사는 데 드는 비용을 뜻한다.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미래 수요 증가를 예상하면 설비투자를 늘리고, 반대로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면 투자를 줄이는 경향이 있다.
설비투자지수가 하락했다는 것은 기업의 투자심리가 위축됐다는 것으로, 경기침체 전조현상으로도 해석된다. 특히 지난 1월은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며 관세 전쟁을 본격화한 시기다. 여기에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의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설비투자가 둔화한 것으로 보인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설비투자를 주도하는 정보기술(IT) 분야 투자가 불안한 상황”이라며 “향후 경기 전망도 불확실하다고 본다”고 우려했다.
다만 정부는 아직 경기침체를 예단하기는 이르다는 입장이다. 이두원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설비투자는 지난해 연간으로 보면 3%, 12월만 보면 7.5% 증가했었다”며 “이로 인한 기저효과로 감소폭이 커진 것일 수 있으므로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설비투자 선행 지표인 국내 기계수주가 1월 전년 동월 대비 38.1% 증가한 만큼, 이후 설비투자가 다시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기재부 관계자도 “관세 이슈는 지난해에도 제기돼 왔던 것인데, 설비투자가 12월에 늘어난 것은 설명할 수 없다”며 “1월에 감소한 것을 미국 영향이라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건설업 부진, 경기 전반에 영향… 건설 실적 2015년 11월 이후 최저
하지만 경기침체 우려를 키운 것은 설비투자뿐만이 아니다. 건설업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건설 실적을 뜻하는 건설기성(불변·계절조정)은 9조8230억원으로, 지난해 12월 대비 4.3% 감소했다. 건축(-4.1%)과 토목(-5.2%) 등 분야에서 모두 공사 실적이 줄어들면서 지난해 3월(9.4%) 이후 10개월 만에 가장 크게 감소한 것이다. 지난해 8월(-2.1%), 9월(-2.0%), 10월(-0.5%), 11월(-3.1%), 12월(-1.9%) 등 6개월째 감소세를 이어오고 있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27.3% 감소해 약 26년 만의 최대 감소폭을 보였다. 건설기성이 10조원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15년 11월(9조7380억원) 이후 9년 2개월 만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광공업과 서비스업 생산지수가 1월 감소한 것은 지난해 12월 늘어난 만큼 ‘조정’된 것으로 보이지만, 건설업은 6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이는 중 마이너스 폭도 커졌다”라며 “건설업이 경기 전반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전산업 생산은 지난해 12월 1.7% 증가했지만 한 달 만에 다시 2.7% 감소로 돌아선 상태다. 여기에 더해 소매판매까지 올해 들어 감소(-0.6%) 전환하면서, 지난해 10월 이후 3개월 만에 생산·투자·소비가 동시에 감소하는 ‘트리플 감소’가 나타났다.
또한 현재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동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는 1월 전월 대비 0.4포인트(p) 하락한 98.4를 기록하며 3개월 연속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향후 경기 국면을 예고해 주는 선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100.4·0.3p↓)도 2개월 연속 하락했다.
주원 실장은 “1월에 수출 등에서 기저효과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주요 지표의) 감소폭이 너무 크다”라며 “정부 측의 설명대로라면 소비는 좋아져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행지수 등이 떨어진 걸 보면 이미 경기 침체가 시작됐다고도 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