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피해 규모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된 둔덕형 방위각(로컬라이저) 시설을 전면 개선하겠다고 지난 22일 밝힌 가운데, 소요 예산 마련 방안 검토에 들어갔다.
25일 정부에 따르면 방위각 시설 개선 사업에는 최소 150억~최대 수천억원대 재정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정부는 공항 관련 예산을 전용해 방위각 시설을 최우선적으로 정비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상태다. 예비비 활용 방안도 거론되지만, 연말 예산 처리 과정에서 야당이 예비비를 감액하면서 재정 운용이 제한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토교통부는 공항 로컬라이저를 충격 시 쉽게 부러질 수 있는 구조물로 교체하기로 했다. 로컬라이저의 높이를 활주로와 맞추기 위해 설치한 둔덕은 제거한다.
둔덕 위에 설치된 구조물은 둔덕의 경사를 완만하게 조정해 항공기와의 충돌을 막거나, 철골 구조물을 세워 로컬라이저의 높이를 조정하는 방안으로 수정한다.
로컬라이저 고정을 위해 지표면에 콘크리트 구조물을 세운 로컬라이저도 완만하게 경사를 두거나 콘크리트처럼 단단하지 않은 구조물 위에 올리는 방식을 검토한다. 구조물 형태는 공항 상황에 맞춰 선정할 방침이다.
국토부는 즉시 설계에 착수해 상반기 내에 개선 공사를 모두 완료할 방침이다. 공사가 길어지면 항공기 시계착륙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공기를 최대한 당길 예정이라고 국토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국토부 내부에선 방위각 시설 설치 방식과 토목 공사 규모에 따라 사업 예산 규모가 크게 달라져 고심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국토부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 무안공항을 비롯해 광주공항과 여수공항, 포항경주공항에 각 1개씩 콘크리트 둔덕 형태의 방위각 시설 구조물이 교체될 예정이다. 김해공항과 사천공항은 방위각 시설 2개의 콘크리트 기초가 일부 땅 위로 튀어나와 있어 구조 변경이 필요하다. 제주공항은 단단한 H형 철골 구조물이 교체 대상으로 지목됐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방위각 시설은 장비와 기본 설치비만 1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지적된 9곳의 방위각 시설을 모두 교체하면 이 비용만 130억원 이상이 소요된다. 여기에 기초적인 설계용역비를 반영하면 최소 사업비만 150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
사업 비용을 키우는 관건은 토목공사의 규모다. 활주로 연장 및 종단안전구역 확보 차원에서 토지를 추가로 매입해야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여기에 이마스(EMAS·활주로 이탈 방지 시스템) 등 추가적인 안전 시설을 도입할 경우 비용은 급증하게 된다. 국토부는 공항 내 안전 구역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울 경우 이마스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뉴질랜드 퀸스타운 공항은 2024년 이마스 등 안전시설 설치에 약 2300만 뉴질랜드달러(한화 180억원)를 책정한 바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공항의 규격과 안전 시스템을 어느 선까지 확보할 것이냐에 따라 비용은 천차만별이 될 것”이라며 “현재 정부가 생각하는 둔덕형 방식을 땅 밑에 심는 지상형 시설로 바꿀 경우 방위각 시설까지 토사를 채워 평탄화를 해야 하는데, 이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추가 안전시설까지 도입할 경우 전체 사업 예산은 수천억원대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정부 내에선 예산 확보 방안을 고심 중이다. 현재 공항 시설 개선 예산이 따로 확보돼 있지 않아, 우선 다른 항목의 예산을 전용해서 쓰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항공·공항 예산으로는 1조3533억원이 배정됐다. 작년 대비 4627억원(52%) 증가했다. 2029년 12월 개항 예정인 가덕도 신공항 건설 예산이 9640억원 배정되면서 크게 증액됐다. 이 외에 새만금신공항 공사비 632억원, 대구경북신공항 설계비 667억원, 제주제2공항 설계비 236억원 등이 반영돼 있다. 현재 정부 내에선 개항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는 가덕도 건설 예산 등에서 전용해 방위각 시설 개선 공사를 진행하고, 추후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등을 통해 확보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예비비 활용 방안도 거론되지만, 기재부 관계자는 “예비비 지출 보다는 전용하는 방안이 우선적”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지난해말 예산 확정 과정에서 야당이 정부가 제출한 예비비 4조8000억원의 절반인 2조4000억원을 감액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연말 예산정국에서 예비비가 반토막이 나면서 공항시설 개선 목적으로 지출하기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