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시중에 풀린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유례없는 고금리 정책을 펼쳤던 한 해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올해 4차례 인상을 거쳐 기준금리를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5.25~5.50%로 끌어올렸고, 한국도 2008년 이후 15년 만에 금리 3.5% 시대를 열었다. 한·미 기준금리 격차는 역대 최대인 2%포인트(p)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하반기들어 이런 기조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연준은 올해 9월부터 그간 가파르게 올렸던 금리를 세 차례 동결했고,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은 내년엔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국내에서도 작년에 비해 안정된 물가를 근거로 통화정책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긴축 종료를 넘어 내년 2분기 국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 전문가 95% “한국·미국 기준금리 인상 끝났다”

29일 조선비즈가 국내 경제 전문가 40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절대다수인 95%(38명)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종료됐다고 평가했다. 2021년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10차례에 걸쳐 금리를 3%포인트 올린 한은이 긴축을 종료하고 통화정책 방향 전환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이 형성된 것이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종료됐다고 평가한 응답자도 95%(38명)였다. 이는 지난 13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올해 마지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 금리를 5.25~5.50%로 유지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연준은 지난 9월부터 지난 FOMC까지 세 차례 금리를 동결하면서 긴축 강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그래픽=손민균

한·미 양국에서 금리 인상 종료 기대감이 확산한 배경으로는 물가 상승률 둔화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꼽힌다.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작년 7월 6.3%까지 높아졌지만 이후 크게 둔화하면서 지난달 3.3%로 낮아졌다. 물가의 기조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 상승률(식료품·에너지 제외)도 작년 11월 4.2%에서 지난달 2.9%로 뚝 떨어졌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3.1% 올랐다. 여전히 2%를 웃돌고 있지만, 작년 7월 무려 9.1% 오르면서 41년 만에 최대폭으로 증가했던 점을 고려하면 상승세가 크게 둔화했다.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물가 상승률도 작년 10월 6.6%에서 지난달 4.0%로 낮아졌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은 물가상승률이 3%대로 낮아졌고, 한국의 물가 상황도 작년보다는 안정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물가가 안정된 흐름으로 가고 있는 것을 볼 때 연준과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이 종료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 “최종금리 수준, 韓 연 2.75%·美 연 4.50~4.75%”

시장에서는 긴축 종료를 넘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지난달 열린 FOMC 회의가 실마리를 제공했다. 연준은 이날 발표한 점도표(dot plot·연준 이사와 연방은행 총재들이 예상하는 향후 정책 금리를 점으로 찍은 표)에서 내년 정책금리 전망치 중간값을 4.6%로 제시하면서 지난 9월(5.1%)보다 0.5%p 하향 조정했다. 제롬 파월 의장은 ‘금리 인하를 논의했다’고 언급하며 통화정책 전환 가능성도 내비쳤다.

전문가들의 예상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40인 전원은 미 연준이 내년에는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했다. 절반 이상인 23명(59%)은 2분기에 금리가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3분기는 12명(30.8%), 4분기는 2명(5.1%)이었다. 내년 1분기에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응답도 2명(5.1%) 있었다.

내년 말 연준의 기준금리 구간을 묻는 말에는 연 4.50~4.75%를 고른 응답자가 18명(46.2%)으로 가장 많았다. FOMC가 내년 중 3회 금리 인하를 시사한 만큼, 현재 금리 수준보다 0.75%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본 것이다. 더 낮은 수준을 예상하는 응답도 있었다. 4.25~4.50%는 9명(23.1%), 4.00~4.25%는 4명(10.3%), 3.75~4.00%는 1명(2.6%)이었다.

그래픽=손민균
그래픽=손민균

전문가 대부분은 내년 말 한국의 기준금리도 현재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40명 중 38명(95%)은 한은이 내년에 기준금리를 내릴 것으로 전망했고, 나머지 2명(5%)은 금리 인하 시점을 2025년 상반기로 예상했다. 내년 2분기가 18명(45%)으로 가장 많았고, 3분기 15명(37.5%), 4분기 5명(12.5%) 등 순이었다.

내년 말 한은의 금리 전망치로는 연 2.75%를 고른 사람이 15명(37.5%)으로 가장 많았다. 현행 3.5%에서 0.75%p 내릴 것으로 본 것이다. 다만 금리가 3% 밑으로 내려가지 않으리라고 예상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연 3.0% 14명(35%), 연 3.25% 7명(17.5%), 연 3.5% 3명(7.5%) 등이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연준이 지난 FOMC에서 금리 인상 사이클 종료 및 향후 인하 방침을 명확히 했고, 파월 의장이 언급한 2%대 중후반 물가(명목과 근원 모두)는 이르면 4월, 늦으면 5월 확인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12월 점도표 상으로는 3회, 75bp 인하를 제시했지만 실제로는 4회, 100bp 인하까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 변수는 국제유가·임금… 가계부채 증가세도 주목

물론 변수는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 지정학적 요인이 해결되지 않으면 국제유가의 변동성이 커져 물가 둔화 흐름이 더디게 나타날 수 있다. 또 경제 성장세가 예상보다 강하고 노동시장의 임금 상승 압력이 지속되면 물가 오름세가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지난달 미국은 실업률이 3.7%로 집계되며 시장의 예상치(3.9%)를 밑돌았고, 한국은 역대 최저인 2.3%를 기록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2023년 하반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한국은 이에 더해 전기·도시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이나 유류세 인하 폭 축소 가능성 등 비용 측면의 인상 압력도 높다. 특히 그간 인상 폭을 제한해왔던 공공요금의 가격 정상화 시기가 지연되면서 비용 인상 압력이 오래 지속되고 있다. 올해 하반기 들어서는 농산물가격까지 올랐고, 주류와 여행·숙박 등 일부 품목에서도 가격 상승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줄어들지 않는 가계부채도 위험요인으로 지목된다. 금융권의 가계대출은 지난 4월부터 11월까지 8개월 연속 늘었다. 증가 폭은 10월 6조3000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지난달 2조6000억원으로 축소됐지만, 주택담보대출은 증가 폭이 여전히 확대되고 있다. 가계부채 증가세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한은이 금리를 낮추면 오히려 부채 증가를 초래할 수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통화 정책 전환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총재는 지난 20일 한은 별관에서 개최한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간담회’에서 “물가상승률을 목표 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한 마지막 걸음이 지금까지보다 쉽지 않을 수 있다”면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긴장을 늦추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국내 상황만 놓고보면 가계부채 증가율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면서 “가계부채가 잘 통제되지 않으면 금리 인하가 시장에 대출을 늘려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위험이 있다”고 했다. 다만 그는 “미국과 한국 모두 내년 경기가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금리 인하 주장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래픽=손민균

◇ 설문에 참여하신 분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상무 ▲곽노선 서강대 교수 ▲김상봉 고려대 교수 ▲김상훈 KB증권 공동 리서치센터장 ▲김성현 성균관대 교수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김영일 대신증권 상무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현수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정책팀장 ▲김현욱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 ▲박선영 동국대 교수 ▲박춘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 ▲백인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석병훈 이화여대 부교수 ▲성한경 서울시립대 교수 ▲신관호 고려대 교수 ▲안성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수석이코노미스트 ▲우석진 명지대 교수 ▲유종민 홍익대 교수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윤창용 신한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 센터장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이윤수 서강대 교수 ▲이재선 현대차증권 연구위원 ▲이종화 고려대 교수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전망실장 ▲조병현 다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 ▲조장옥 서강대 명예교수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추광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 ▲하준경 한양대 교수 ▲허준영 서강대 부교수 ▲홍기석 이화여대 교수 ▲황승택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