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무역수지가 1년 4개월 만에 흑자로 돌아서면서 연초부터 부진했던 경상수지도 개선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통관 기준 수출과 수입의 차이를 나타내는 무역수지는 경상수지를 구성하는 항목 중 가장 비중이 큰 상품수지와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우리나라 기초체력을 나타내는 지표인 경상수지는 올해 1~4월 54억달러에 육박하는 적자를 냈는데, 한국은행은 하반기 수출 회복에 힘입어 경상수지가 256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4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무역수지는 11억3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해 지난해 3월부터 15개월 연속 이어온 적자 행진에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달 국제유가 하락으로 수입 감소폭이 수출 감소폭을 넘어서면서 수출액이 수입액을 웃돌았다. 산업부 관계자는 “7~8월에는 하계휴가 등 계절적 요인으로 무역수지 개선 흐름이 일시 주춤할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흑자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월별 수출 감소율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하반기 들어 무역수지 흑자 기조가 굳어질 경우 경상수지도 흑자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이동원 한국은행 경제통계국 금융통계부장은 “경상수지는 5~6월 상품수지를 중심으로 개선세가 확대되고, 하반기 들어 본격적으로 회복하면서 흑자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올 하반기 경상수지가 250억달러대의 흑자를 올릴 것으로 예측한 또 다른 이유는 임금·배당·이자 흐름을 반영하는 본원소득수지가 지난해보다 큰 폭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 올 들어 한국 대기업의 해외 자회사가 국내로 송금하는 배당금이 늘면서 우리나라 경상수지 구조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대자동차그룹은 올해 주요 계열사의 해외 자회사가 국내 본사로 보내는 배당금을 약 7조8000억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지난해의 약 4배 규모다. 배당액은 전기차 공장 신설 등에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그동안 경상수지는 ‘경제 버팀목’인 수출을 중심으로 상품수지(수출과 수입의 격차)가 흑자를 견인하는 구조였다. 해외 여행을 떠나는 내국인이 한국을 찾는 외국인보다 많았기 때문에 여행수지는 만성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 결과 여행·운송·지적재산권 사용료 등의 거래를 포함한 서비스수지도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 부진이 지속되면서 경상수지도 올 들어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 1~4월 경상수지는 누적 53억7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상품수지는 같은 기간 92억7000만달러 적자를 냈다. 해외 여행 회복의 여파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보다 해외로 떠나는 내국인이 늘면서 서비스수지도 84억1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그나마 본원소득수지가 1~4월에 누적 132억2000만달러 흑자를 내면서 수출 한파로 인한 경상수지 적자가 더 악화하지 않도록 도움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경상수지를 구성하는 상품수지, 서비스수지, 본원소득수지, 이전소득수지로 중 올 들어 4월까지 흑자를 낸 항목은 본원소득수지 뿐이었다. 흑자 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 14억5000만달러와 비교해 약 4배로 불어났다.
본원소득수지 흑자는 배당소득이 견인했다. 본원소득수지에는 한국 기업의 해외 자회사가 본국으로 송금하는 배당소득이 포함된다. 1~4월 배당소득수지는 107억8000만달러 흑자로 본원소득수지 흑자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배당소득수지가 14억6000만달러 흑자에 그쳤던 점을 감안하면 올 들어 이례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이는 정부가 법인세법을 개정한 이후 삼성전자, 현대차 등 대기업의 ‘자본 리쇼어링’(해외법인 소득의 국내 유입)이 활발해진 결과다. 지난해까지 우리 기업은 해외에서 이익을 내도 본사로 보내길 꺼려했다. 국내로 송금하는 과정에서 세금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이에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기업들이 해외법인에 자금을 유보시키거나 현지 재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법인세법 개정안이 올해 1월부터 시행되면서 기업의 세금 부담이 크게 줄었다. 기획재정부는 우리 기업이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해외 자회사로부터 받는 배당금에 대한 비과세율을 95%로 규정하고, 나머지 5%에 대해서만 법인세를 부과하도록 세재를 개편했다. 현대차의 경우 올해 본사로 송금하기로 한 59억달러 중 56억달러가 비과세 대상이 된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발간한 ‘경제 전망’에서 자본 리쇼어링에 힘입어 올해 본원소득수지 흑자 규모가 연간 33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132억2000만달러)보다 2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본 것이다. 본원소득수지가 큰 폭 늘어나고, 하반기 수출 회복으로 상품수지가 개선될 경우 경상수지도 흑자 전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연간으로는 240억달러 흑자를 낼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대기업은 올 들어 자본 리쇼어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배당금을 공개한 현대차 외 삼성, SK, LG그룹 계열사 등도 해외 법인에 유보금으로 쌓여 있는 현금을 국내로 들여오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 1분기에만 해외 법인에서 거둬들이는 배당금을 8조4398억원으로 늘렸다. 지난해 연간 배당수입(3조9523억원)을 이미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