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건설 현장에 만연하던 불법·부당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내놓은 ‘2·21 대책’이 건설사 비용 절감과 공기 단축으로 이어지고, 주택 분양가 인하로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쏠린다. 정부는 현재 건설 현장에서 조 단위 규모의 비용이 음성적인 경로로 지출되고 있으며, 이러한 비용은 국민의 분양가 부담으로 전가됐다고 보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된 ‘건설 현장 불법행위 근절 대책’ 브리핑에서 “타워크레인 한 대가 한 달에 1500만원 이상의 돈을 가져간다”면서 “크레인뿐만 아니라 레미콘 등 건설기계 등이 가져간 비용을 취합해 보면 최근 2년 치만 해도 조 단위가 넘어간다”고 말했다.
원 장관은 이어 “최근 방문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선 원래 계약에 없던 비용이 백수십억원 지급돼 가구당 2000만원씩 소비자들에게 전가되기도 했다”며 “정당하게 중소기업에 가야 할 사업 대금과 안전 관리 비용으로 지출돼야 할 부분이 노조에 들어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월례비만 243억…건설사 계좌 확인 피해액만 1700억 달해
국토부 조사에 따르면, 금품 수수나 채용 강요 등 건설노조의 불법행위는 전국 1494개 현장에서 2070건 발생했다. 사실상 전국의 모든 건설 현장에서 불법행위가 있었다는 얘기다. 이들 현장에서 3년 동안 발생한 피해액만 1686억원에 이른다. 추정치가 아닌 계좌 명세로 입증된 피해액 규모다. 계좌에 기록이 남지 않은 비용까지 추산할 경우, 조 단위를 넘어설 것이라는 게 국토부의 분석이다.
국토부의 건설 현장 불법행위 조사에선 크레인 기사들의 ‘월례비’ 편취 행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크레인 기사 438명에게 월례비로 243억원이 지급됐다. 월례비는 하도급 건설 업체들이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 주는 비공식 수고비를 말한다. 건설사들은 크레인 기사들의 근로 여부와 관계없이 해당 비용을 지급해왔다.
월례비를 가장 많이 받은 기사는 1년에 월례비로만 2억2000만원을 받았다. 매달 1700만원을 일하지 않고 건설사로부터 수금한 것이다. 크레인 기사 상위 20%가 받은 평균 월례비는 연 9500만원. 월례비로만 억대 연봉 수준의 뒷돈을 챙겼다. 수십 년 동안 관행처럼 유지된 일종의 상납금이다.
건설사들은 일하지도 않은 크레인 기사들에게 왜 월례비를 줘야 했을까. 업계 관계자는 “월례비를 주지 않을 경우 태업이나 사업장 점거를 하는 등 현장의 피해가 컸다”고 전했다. 공사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지출이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고층 건물을 짓는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은 공사 기간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바람이 불어 위험하다는 이유로 운행을 하지 않으면 공사 진행이 전면 중단되는 수준이다. 이러한 일을 막기 위해 ‘잘 봐달라’며 담뱃값처럼 챙겨 주던 게 ‘월례비’ 형태로 고정 비용이 됐다는 뜻이다.
◇ ‘카르텔’ 된 건설노조…부실 공사에 건설비 증액 유발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경제적 이익을 향유하기 위해 ‘노조’를 결성하고 이익집단화했다. 타워크레인 기사가 많아지면 자신들의 이익이 줄어들 것을 우려해 노조 가입에도 장벽을 쳤다. 노조 가입을 막고, 건설업체가 비(非)노조 기사를 고용하는 것은 현장 점거 등 집단 행위를 통해 원천 봉쇄했다. 건설사들로선 ‘울며 겨자 먹기’로 노조의 요구 사항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관련, 국토부 관계자는 “건설노조는 통행 방해나 집회 소음 등으로 주민 민원을 유발하는 행위를 하거나, 작업 지연 등을 통해 건설사를 압박한다”면서 “최근 들어선 노조 간 지위 확보를 위한 다툼도 심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현장에선 노조들이 공사 효율을 높이는 장비를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기도 한다. 공사 기간이 짧아지면, 그만큼 자신들이 받을 수 있는 임금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소속 노조원의 고용 확대를 요구하며 장비를 망가뜨리는 때도 있다.
업체들은 지연된 공기를 맞추기 위해 안전 구조물을 기존 계획보다 적게 설치하는 등 불법·편법 행위를 동원해야 하는 실정이다. 과다 지급된 비용을 맞추기 위해 자재를 아끼고, 이게 부실시공으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건설업계 내부에서 나온다.
결국 노조의 불법 행위는 건축물의 최종 소비자인 국민의 부담으로 전가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부당금품 수수, 공사 방해는 안전·품질 문제 야기는 물론,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져 국민 부담을 초래하는 등 국내 경제를 위협하는 요인이 됐다”고 했다.
정부는 향후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불법행위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강화할 방침이다. 고용노동부는 다음 달부터 노조의 채용 강요 행위에 대한 집중 점검에 나선다. 공공기관의 민·형사 대응을 통해 건설노조의 부당한 이익을 환수하는 시스템도 구축할 방침이다.
정부는 또 불법행위 신고 활성화를 위해 하도급사의 피해를 원도급사가 직접 대응할 경우 정부 포상과 시공 능력 평가 가점을 부여할 방침이다. 법을 개정해 감리자에게도 불법행위를 인지할 경우 발주청이나 건축주나 허가관청에 보고할 것을 의무화할 계획이다.
원 장관은 “대책이 하루빨리 시행될 수 있도록 점검 ·단속에 집중해서 불법 사항은 즉시 처벌 또는 수사를 하겠다”며 “입법이 필요한 사항은 상반기 내에 발의해서 국회와 적극적으로 협의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