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에너지 위기 극복을 위한 범국민 '에너지 다이어트 서포터즈 발대식'에서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참석자들이 서약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올해 500억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는 무역수지 적자 개선을 위해 고강도 에너지 절감에 나선 정부가 유류세 인하 조치 연장과 자동차·발전연료의 개별소비세 인하 조치를 결정했다. 에너지 수요를 줄이는 절약운동을 민간으로 확산해 에너지 위기를 돌파하겠다더니, 정작 에너지 수요를 자극하는 정책의 수명을 연장시켰다.

5%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를 연장한 것은 ‘물가 안정’에 초점이 맞춰진 거시 경제 정책 기조와도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19일 발표한 ‘2023년 상반기 개별소비세 탄력세율 운용방안’에서 ▲유류세 한시적 인하 4개월 연장 ▲자동차 개소세 인하 6개월 연장 ▲발전연료 개소세 한시적 인하 6개월 연장 방침을 발표했다.

유류세는 현행 37% 세율 인하 조치를 내년 4월 30일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다만 휘발유에 대해선 유류세 인하 폭을 25%로 일부 환원할 방침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유가 동향, 물가 상황 및 국민들의 유류비 부담 수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 것”이라며 “특히 휘발유 가격은 경유 등 타 유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보이는 점을 감안해 유류세 인하폭을 일부 축소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5월 1일부터 유류세 인하율을 20%에서 30%로 확대해 시행했다. 이어 7월부터는 최대한도인 37%까지 인하율을 확대했다.

작년 말 배럴당 75달러선에 거래되던 국제유가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3월 들어 110달러 선을 돌파했다. 이후 7월까지 100~110달러대를 유지했다. 국제유가 상승에 국내 판매가도 함께 뛰었다. 이에 정부는 물가 안정 조치로 유류세 인하에 나섰다.

그러나 9월 이후 차츰 내려가기 시작한 국제 유가는 이달 들어 작년 말 수준인 75달러 선에 거래되고 있다. 유가 하락에 국내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1500원대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기재부에 따르면 이번 유류세율 인하 조치에 따른 가격 인하 효과는 리터(L) 당 ▲휘발유 205원 ▲경유 212원 ▲LPG부탄 73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휘발유의 경우 현재보다 인하 혜택이 리터 당 99원 감소해 주유소 판매가가 100원가량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작년 말 기준 유류세보다는 40원 가량 인하 혜택을 보게 된다.

전문가들은 유류세 인하 조치 연장으로 인한 에너지 소비 증가와 재정 낭비를 우려한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유류세 인하는 에너지 소비와 수입을 늘리는 정책”이라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역차별적인 정책으로, 특히 추운 날씨엔 국민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보다 자가용을 이용하도록 부추기는 효과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에너지·물가 위기 상황에선 생계형 영업용 차량에만 에너지 바우처를 지급하는 ‘타깃형 에너지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IMF도 지적한 바 있다”며 “유류세 인하로 인한 가격체계 교란과 무역적자 확대, 재정 낭비를 봤을 때 이해하기 힘든 정책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주유소의 휘발유와 경유 판매 가격이 하락세를 보였다. 경유 가격은 약 9개월 만에 1700원대로 내려왔다. 지난 17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12월 둘째 주(11∼15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L(리터)당 1568.9원으로 전주보다 42.2원 내렸다. 사진은 18일 서울 시내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정부는 또 연말 종료 예정인 승용차 개소세 30% 감면 조치를 내년 상반기까지 6개월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승용차 소비 진작’ 차원이라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승용차 구매 시 가격 부담을 완화하고, 기존 인하 기간 중 차량 구매계약을 체결한 소비자가 차량 출고 지연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례를 감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의 설명은 모순된다는 지적이다. ‘차량 출고 지연’이 발생할 정도로 시장이 호황인데 ‘승용차 소비 진작’을 위한 정책을 유지하는 것은 누가 봐도 어색하다는 것이다.

특히 차량 출고 지연이 현대차나 기아차 등 특정 기업에서 주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특정 기업 지원’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아울러 정부가 개소세 인하 연장 배경으로 ‘차량 출고 지연’을 꼽았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개소세 인하 종료 시점을 못 박기 쉽진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시적인 개소세 인하가 끝나더라도 또 인하될 수 있다는 인식이 형성된다면, 정상적인 소비행위가 일어나기 어렵다”라며 “일관성 없는 인하 정책 때문에 자동차 개소세를 제대로 낸 소비자 입장에서는 형평성을 제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