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반기 역사상 네 번째 ‘한·미 금리 역전기’가 찾아왔다. 유례없이 거대했던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 인상 보폭에 한때 그 격차는 100bp(1bp=0.01%p)까지 벌어졌지만, 시장의 우려와는 다르게 최근 원·달러 환율은 뛰기는커녕 1200원대로 급락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가 역전되는 현상 그 자체에 마음을 졸였던 올해 초중순과 비교하면 사뭇 낯선 반응이다.
내년도 한국 경제를 전망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와 비슷한 인식이 감지된다. 전문가 4명 중 3명은 향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함에 있어, ‘경기둔화’ 같은 국내 경제 요인을 더욱 주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물가 대응에만 집중해 통화정책을 운용하기가 곤란한 상황이 됐으니 이제는 속도 조절에 나서야 할 때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현재보다 더 큰 폭의 내외금리차까지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보는 시선이 깔려 있다.
◇ “한은 기준금리, 우리 경기·자금시장 상황 보고 결정”
6일 조선비즈가 국내 경제전문가 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77.5%(31명)가 향후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 결정에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사안으로 ‘경기 및 자금시장 상황 등 국내 경제 요인’을 꼽았다. 또 다른 선택지인 ‘미국과의 금리 차이 등 대외 요인’을 고른 사람은 17.5%(7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두 가지 모두 중요한 사안이니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본 답변(5.0%·2명)이었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살펴볼 만하다. 우선 한은은 올해 역사상 처음으로 6회(4·5·7·8·10·11월) 연속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등의 기록을 썼는데, 이런 결정의 배경에는 항상 ‘물가 안정 우선’이란 과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한은이 더 이상 물가 대응에만 골몰하기엔 곤란해졌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미 기준금리 0.25%포인트(p) 인상에 그친 11월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결정으로, ‘물가 대응(통화 긴축)’에서 ‘경기둔화·자금시장 주시(속도 조절)’로 한은의 무게 추가 기울기 시작했다는 시각이 짙다. 문홍철 DB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최근 초래된 자금시장 경색 문제야말로 그간 과도한 긴축에 따른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며 “11월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 조절은, 긴축의 부작용으로 국내 시장에 예상외의 충격이 가해진 현 상황을 수습하기 위한 결정으로 해석된다”라고 말했다.
◇ 과반 “최종금리 수준, 韓 연 3.5%·美 연 5~5.25%”
동시에 이는 내외금리차, 특히 역전된 한·미 금리 차가 조금 더 벌어지더라도 우리 시장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는 인식으로도 해석해 볼 수 있다.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는 연 3.25%, 미국은 연 3.75~4.0% 수준으로, 금리차가 75bp에 달한다. 그리고 이번 달 미국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시장이 기정사실로 하고 있는 0.5%p 인상이 반영된다면, 그 차이는 곧 125bp까지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한국과 미국의 최종금리 전망을 묻는 설문 항목에서도 전문가들의 이같은 시각이 엿보인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이 어느 레벨(level·수준)에서 종료될 것으로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전문가 과반(52.5%·21명)이 연 3.50%라고 대답했다. 연 3.75%가 27.5%(11명)로 그다음으로 많았고, 연 4.00%(10%·4명), 연 3.25%(7.5%·3명), 연 4.25%(2.5%·1명)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미국의 최종금리 수준은 어떻게 내다봤을까. 연 5.00~5.25%를 택한 답변이 52.5%(21명)로 가장 많았다. 연 4.75~5.00%(22.5%·9명), 연 4.50~4.75%(12.5%·5명)이 뒤이었으며, 연 5.25~5.50%까지 바라본 전문가들도 12.5%(5명)나 됐다.
가장 많은 답변을 차지한 한국과 미국의 최종금리 예상치는 각각 연 3.50%, 연 5.00~5.25%다. 현재 수준에서 우리나라는 0.25%p 단 한번만의 스텝을 남겨뒀고, 미국은 아직 1.25%p나 더 남았다. 극단적이지만 최종 금리 예상치를 단순히 차감해서 본다면, 전문가들은 한·미 금리 역전 차가 150~175bp까지 벌어져도 괜찮다고 바라보는 셈이다.
◇ “외자유출·환율, 단순 내외금리차 아닌 펀더멘털이 중요”
주목할 부분은 숫자가 아니라, 내외금리차 확대 문제를 바라보는 경계감이 상대적으로 무뎌졌다는 데 있다. 앞서 지난 5월 조선비즈가 실시한 하반기 경제전망 설문조사 때만 해도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예측에 있어서, 한·미 금리 역전은 주요한 고려 요소였다. 한·미 금리 역전에 따른 외국인 자금 유출, 원화 가치 하락 등의 위험을 최소화하려면 한국은행도 서둘러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즉 국내 경제의 안정이 자금 유출입에 더욱 중요하다는 시각이다.
백인석 자본시장연구원 거시금융실장은 “외자 유출이나 환율에 있어서, 단순 금리 차보다는 여러 경제적 펀더멘털 요인이 더 중요하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다만 올 초에는 물가가 너무 급격히 오르고 미 연준이 시기를 놓쳐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설 때라 신흥국 시장으로의 충격이 예상돼, 한·미 금리차를 크게 우려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기준금리 수준이 실물 경제를 제약하는 수준까지 근접해온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그간 인상해 온 효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감당 가능한 수준보다 더 금리가 오른다면 여러 펀더멘털이 훼손돼 단기자금시장이나 기업·가계부채 등 금융 불안으로 확산할 수 있고, 이것이 오히려 더 외자 유출을 부추기는 위험 요인으로 부각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 역시 한·미 금리차가 한은의 통화정책 결정에 있어서, 최우선 고려 요소가 아니라는 점을 거듭 분명히 한 바 있다. 이 총재는 지난달 금통위 기자간담회에서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굉장히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미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 속도를 줄이겠다는 발표만으로도 우리 외환시장이 굉장히 안정됐지 않나. 금리 격차 자체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한 요인이지, 다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 사례”라며 “미국의 금리 결정뿐만 아니라 중국 경제 상황과 코로나 정책 등이 우리 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못지않게 중요한 상황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 설문에 참여하신 분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권혁상 NH투자증권 이사 ▲길광수 KB국민은행 자산운용부장 ▲김성은 세종대 경제학부 교수 ▲김종민 메리츠화재보험 부사장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부 교수 ▲김현수 대한상의 경제정책실장 ▲김현욱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위원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부 교수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선임 연구위원 ▲백인석 자본시장연구원 거시금융실장 ▲변세일 국토연구원 연구위원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부 교수 ▲선정훈 건국대 경영대 교수(한국증권학회장) ▲송의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부 교수 ▲신환종 한국투자증권 상무 ▲안성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 ▲안형상 키움투자자산운용 본부장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 ▲이재형 유안타증권 연구위원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부 교수(한국경제학회장) ▲이한영 DS자산운용 자산운용본부장 ▲전영준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조원경 유니스트 교수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최상엽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최석원 SK증권 지식부문장 ▲추광호 한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 ▲허관 신한투자증권 본부장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홍성욱 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 ▲황인선 국제금융센터 부원장 ▲3명 익명으로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