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6조원 규모의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입하고 대출적격담보증권 대상에 은행채와 한전채 등 공공기관채를 포함하기로 결정했다.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자금시장 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유동성을 직접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27일 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단기금융시장 안정화 조치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금통위는 “최근 단기금융시장을 중심으로 신용 경계감이 높아지고 그 영향이 채권시장에도 파급됨에 따라 시장 안정 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고 했다.

서울 태평로 한국은행 입구. /박소정 기자

한국은행은 단기금융시장의 원활한 자금 순환을 위해 예정에 없던 RP 매입을 실시하기로 했다. 증권사, 증권금융 등 한은 RP매매 대상기관을 상대로 내년 1월까지 한시적으로 6조원 규모의 RP 매입을 단행한다는 방침이다.

최근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단기금융시장 불안이 연말 연초 단기자금 경색으로 이어지는 상황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RP 매입을 결정했다는 게 한국은행의 설명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이번 RP 매입은 시장안정화 조치의 일환으로, 공급된 유동성은 공개시장운영을 통해 다시 흡수되기 때문에 추가 유동성 공급 효과가 거의 없다”면서 “일시적 유동성 위축 완화 목적인 만큼, 현재 통화정책 기조와 배치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RP매입은 내년 1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실시하지만 금융시장 상황을 고려해 필요시 연장 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대출 적격담보증권, 차액결제이행용 담보증권, 공개시장운영 RP매매 대상증권 대상을 내달 1일부터 3개월 간 한시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기존 국채, 통안증권, 정부보증채,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저당증권(MBS), 특수은행채 외에 은행채와 9개 공공기관발행채권이 대상증권에 포함된다.

새로 추가된 공공기관 채권에는 한국전력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국가철도공단,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한국가스공사, 한국도로공사, 한국수자원공사, 한국철도공사, 예금보험공사 등 9개 공사·공단이 들어간다.

한국은행은 이번 조치로 국내 은행들이 활용할 수 있는 추가 고유동성자산 확보 가능 규모가 최대 29조원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국내 은행들이 한국은행에 은행채 등으로 담보를 납입해 확보하게 되는 국채, 통안채 등을 통해 유동성 규제비율 준수 부담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향후 장외외환파생거래 증거금 추가 납입 등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또 차액결제이행용 담보증권 제공비율의 단계적 인상 계획을 3개월 연기하기로 했다. 금융기관 간 차액결제 시 결제이행을 보장하기 위해 추진하던 당초 담보증권 제공비율 현행 70%에서 내년 2월 1일부터 80%로 인상하기로 했는데, 이를 3개월간 유예하기로 한 것이다.

국제기준인 PFMI(금융시장인프라에 관한 원칙)에 맞추기 위해 2025년 2월까지 매년 10%포인트씩 해당 비율을 인상하기로 했던 계획도 순차적으로 유예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담보증권 제공비율의 100% 인상 시점은 당초 2025년 2월에서 2025년 5월로 연기됐다.

한국은행은 이번 조치로 금융기관이 한국은행에 납입해야 하는 담보증권금액이 59조7000억원에서 52조2000억원으로 7조5000억원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해당 조치들은 통화정책의 주요 파급경로인 단기금융시장과 채권시장의 원활한 작동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