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심화된 폭우, 폭염, 가뭄 등 이상기후 현상으로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를 넘어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8일에는 115년 만의 폭우로 서울 강남구 일대가 물에 잠기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서울 등 수도권에는 오는 11일까지 최대 300mm 집중 호우가 더 쏟아질 것이라는 예보가 나왔다. 수도권을 강타한 8월 중순의 장맛비는 주말까지 전국적으로 350mm의 비를 뿌리겠다.
중부지방은 폭우에 시달리는 반면, 남부지방은 극심한 가뭄이 지속되고 있어 농산물 작황 부진이 불가피해 보인다. 농산물 작황이 나빠진 상황에서 추석 성수품 수요가 증가하면 다음달 채소류, 가공식품 등의 가격이 뛸 경우 물가도 추가 상승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 올해 연간 물가상승률 5% 돌파 예상
10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4.9%를 기록했다. 6%를 웃도는 고(高)물가 흐름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정부와 한국은행의 전망을 반영하면 올해 연간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5%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간 물가상승률이 5%를 넘어선 것은 외환위기 당시인 지난 1998년(7.5%)이 마지막이다.
올해 들어 물가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공급망 차질의 여파로 국제유가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가파르게 상승했다. 공급측 요인으로 시작된 물가 오름세는 최근 개인서비스 등 전방위로 확산되는 추세다.
지난달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3%를 기록했는데, 농축수산물(7.1%)과 개인서비스(6%)가 상승세를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축수산물 중에서도 채소류 가격이 25.9% 급등했는데,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한 가운데봄철 가뭄, 장마, 폭염 등으로 작황이 크게 악화된 영향이 컸다고 통계청은 설명했다. 주요 식재료인 채소가격이 치솟으면서 외식을 포함한 개인서비스 물가도 덩달아 올랐다.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비) 6.3%에 대한 농축산물의 기여도는 0.62%p로 분석된다. 지난 6월의 기여도 0.42%p에 비해 0.2%p 상승한 것이다. 이번 집중 호우로 각종 작물의 출하가 차질을 빚게 되면 7월에 비해 농축산물의 물가 상승 기여도는 더 높아질 수 밖에 없다.
한 경제 연구원 관계자는 "각종 음식 서비스의 재료비를 결정하는 농축산물 물가의 불안은 곧바로 외식비 등 서비스 물가를 자극하는 요인이 된다"면서 "농축산물 물가 상승은 단순 기여도 이상으로 전방위적으로 물가 상승률을 가파르게 끌어올리는 휘발성을 띄고 있다"고 말했다.

◇ 폭우에 농산물 가격 급등→기대 인플레 상승→임금 인상 요구
이달까지 폭염, 폭우, 가뭄 등 삼중고(三重苦)가 지속되면서 당분간 물가도 추가 상승 압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당초 정부와 한국은행은 올해 물가가 9~10월쯤 정점을 찍고 서서히 내려올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이상기후로 농산물 작황이 예상보다 더 악화될 경우 그 시점이 뒤로 미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장 비가 집중된 경기와 강원 지역을 중심으로 농산물 출하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지금 고랭지 채소들이 나오는 시점인데 (폭우로) 작업을 못해서 출하량 감소가 전망된다"며 "벼는 물 잠김으로 인해 품질이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는 남부 지방에서는 농산물 생육 부진으로 출하량이 감소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국은행은 농산물과 외식 가격 상승이 소비자의 체감물가에 큰 영향을 주고, 이는 가계와 기업이 예상하는 미래 물가상승률인 기대인플레이션을 자극한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달 우리나라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전월(3.9%)보다 0.8%포인트 오른 4.7%를 기록했다. 기대인플레이션이 오르면 근로자는 기업에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기업은 비용 인상분을 제품·서비스 가격에 반영하면서 실제 물가도 상승 압력을 받게 된다.
◇ 배럴 당 90달러대 국제유가, 인플레 완화 요인
다만 최근 국제유가가 코로나 이전 수준인 배럴당 90달러 안팎으로 떨어진 점은 10월 물가 정점론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다.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이 재개되면서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7월 세계식량가격지수가 14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한 점도 물가 하방 요인으로 꼽힌다.
앞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9월 말 또는 늦어도 10월 정도가 물가 정점이 될 것"이라며 "다만 이는 러시아 사태로 인해 유가가 다시 폭등하거나 공급망 악화 등으로 곡물 가격 상황이 현재보다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대외적인 여건을 전제로 한다"고 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국제유가 등 해외 요인에 변화가 없다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를 넘는 상승세가 2~3개월 지속된 뒤 조금씩 안정될 것으로 본다"며 "물가 오름세가 예상과 다르게 움직인다면 추가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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