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리스크가 커 기업이 섣불리 뛰어들지 못하는 신산업 분야의 혁신을 앞당기기 위해 정부가 민간 지원에 나선다. 1조원 규모의 산업기술 혁신펀드를 조성해 연구개발(R&D)이 사업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고, 4000억원 이상을 투입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미래 기술을 개발한다. R&D 수행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문턱과 중견기업의 R&D 자기부담률을 낮춘다. 해외기관이 참여하는 국제 공동 R&D 과제도 늘린다.

사진은 LG화학 연구원들이 연구 장비를 살피는 모습. / 연합뉴스

산업통상자원부는 16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제1차 산업기술 CTO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하고 이런 내용이 담긴 새 정부의 산업기술 혁신전략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이번 행사는 국가 R&D 110조원 시대에 민간 부문의 기술 혁신을 담당하는 반도체·이차전지·로봇·모빌리티 등 주요 산업계 CTO의 의견을 듣고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마련됐다. 삼성디스플레이·네이버·SK이노베이션·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POSCO 등의 기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산업부는 수소경제, 미래 모빌리티 등 높은 실패 확률로 민간 투자가 활발하지 않은 신산업 분야의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향후 5년간 10개의 목표 지향형 ‘메가 임팩트(Mega Impact)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또 R&D의 궁극적 목표인 사업화를 위해 특허·표준·규제 등을 미리 분석해 과제 기획 단계에 반영하고, 기술창업 등 사업화에 투자하는 산업기술 혁신펀드를 향후 3년간 1조원 규모로 조성하겠다고 했다.

산업 구조를 선진국 추격형(fast follower)이 아닌 선도형(first mover)로 전환하기 위한 ‘파괴적 혁신(Disruptive&drastic innovation) R&D 사업’도 신설한다. 각 분야 전문가 그룹이 신기술·신제품 개발 과제를 기획(Pre-R&D)하면 세부 기술 개발은 이 R&D 사업을 통해 추진하는 식이다. 미래에 글로벌 시장을 주도할 게임 체인저 기술을 개발하는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도 시작한다. 2025년까지 총 12개 테마를 선정해 4142억원을 지원한다. 올해는 노화 역전, 초실감 메타버스 시각화 등 3개 테마가 선정됐다.

산업부 관계자는 “산업기술 R&D를 통한 인적·물적 자산의 체계적 축적과 활용을 위해 산업기술 가치사슬 플랫폼인 TVC(Tech Value Chain)를 새롭게 구축하고, R&D 성과물에 대한 분석·환류 시스템도 고도화할 것”이라고 했다.

민간 기업 R&D 수행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작업도 강화한다. 정부는 예타 대상에 오르는 R&D 사업 규모를 현행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확대 개편하고, 현재 중소기업 3개, 중견기업 5개인 기업 당 동시수행 과제 수를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 또 매출액 3000억원 미만 초기 중견기업의 R&D 자기부담률은 현행 총사업비 50%에서 중소기업 수준인 33%로 하향 조정할 방침이다.

산업부는 R&D 프로세스 전반의 과감한 규제 혁파와 인센티브 확대도 병행한다고 전했다. 신규 기술 개발 과제에만 한정됐던 R&D 자율성 트랙(연구목표 변경·사업비 정산 등 연구 자율성 부여) 적용 대상을 계속과제나 기반구축 과제까지 확대하고, 사업화 매출 우수 기업의 기술료를 감면할 계획이다.

이 밖에 정부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국내 기업 역량 강화를 위해 현재 2% 수준인 국제 공동 R&D 과제(해외기관 참여 과제)를 2025년 15%까지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기업 관계자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생태계 구축이나 플랫폼 없이 독립적인 하드웨어 제품 개발만으로 산업을 이끌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설비·공정 개발을 위한 대규모 국가 R&D 지원 확대, 연구기관 간 유사 과제 통합 등 정부가 기업의 기술 혁신을 촉진할 수 있는 생태계를 적극 조성해 줄 것을 건의했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기업 주도의 역동적인 기술 혁신을 위해 업계와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혁신 전략의 신속한 이행과 대규모 사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