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경쟁 당국은 경제법령상 형벌을 행정 제재로 전환하고, 형량을 합리화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일감 몰아주기 등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 및 사익편취 행위에 대한 규제를 적용하는 기준, 예외를 인정해주는 요건 등을 심사지침에 명확하게 담아 기업의 불확실성을 해소해주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공정거래법상 독과점 업체를 의미하는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정하는 기준인 연간 매출액, 구매액의 기준도 상향 조정할 방침이다.
윤 정부의 경제정책방향은 공정거래위원회 소관의 정책들은 대부분 기업 규제를 덜어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전 문 정부에서 강조됐던 재벌 개혁, 상생 등의 키워드는 사라지고 ‘자유’ ‘자율 규제’ 등이 등장했다. 공정위 본연의 역할인 적극적인 시장 감시와 경쟁 촉진 기능 대신 기업 민원 해소를 주된 역할로 제시한 것이다. 기업의 불공정행위를 단속하고 처벌하는 ‘경제 검찰’로서의 역할보다는 기업 간 경쟁을 촉진하는 경쟁 당국으로서의 기능을 강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하는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확정, 발표했다. 이번 윤 정부의 첫 경제정책방향에 담긴 공정위 관련 내용들은 대부분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고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게 기업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하자는 취지다.
우선 정부는 “민간·기업·시장의 자유와 창의가 극대화될 수 있도록 조세·형벌 규정 등을 합리적으로 재조정”하겠다고 밝혔다. 경제법령상 형벌이 기업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하지 않도록 행정 제재 전환, 형량 합리화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법무부·공정위·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 TF를 통해 주요 과제를 발굴하고 개선할 계획이다.
공정거래법 상 부당지원 및 사익편취 행위에 대한 규제 적용·예외인정 범위 명확화를 위해 심사지침도 개정한다. 우선 부당지원의 경우, 거래 총액 등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규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현재는 정상 가격, 지원 금액 등 불확정 개념으로 부당지원 여부를 판단하고 있어, 사업자가 사전에 형벌의 수준을 판단하기가 어렵다.
흔히 ‘일감 몰아주기’로 불리는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의 경우 ‘효율성 증대’ 등 예외 인정 요건을 구체화할 방침이다. 공정거래법상 사익 편취란 회사가 총수 개인 또는 총수 일가(특수관계인)의 보유 지분율이 상장사는 30%, 비상장사는 20% 이상인 계열사와 정상적인 거래에서 적용될 것으로 판단되는 것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 자산, 상품·용역, 인력 등을 거래하고 사업 기회를 제공하는 행위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 중으로 이익의 부당성 판단 기준 등에 대해 대법원 사례 등을 고려해 구체화할 방침이다.
지난 2007년 이후 기준 개정이 없었던 ‘시장지배적 사업자’ 판별 기준을 상향 조정한다. 현재는 연매출 또는 구매액 40억원 사업자 중 1개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이거나, 3개 사업자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75% 이상인 경우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판단하고 있다. 이를 경제 규모 증가 등을 고려해 매출액과 구매액 기준을 상향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이번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공정위 관련 내용들에는 공정위 권한에 힘을 빼거나 과거에 논의를 시도했지만 시장 경제 원리를 훼손한다는 지적에 폐기된 사안이 담겨 있다. 공정위에서 반대 의견이 강한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하거나 공정위가 이전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내용은 오히려 축소시키는 식이다.
‘공정한 시장 질서 확립’의 일환으로 제시된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 방안이 대표적이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하도급 계약 기간 동안 원부자재 가격이 변동되면 이를 반영해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게 납품단가를 인상해주는 제도다. 납품단가 연동 표준계약서를 마련하고, 납품단가 연동제를 시범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또 조정협의제도 개선, 인센티브 제공 등을 통해 자율적인 상생 문화를 유도한다. 가령 중소기업협동조합의 납품단가 조정협상 대행 요건을 완화하고, 절차를 간소화하는 식이 될 전망이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지난 2008년에도 도입이 검토됐지만 시장 원리를 훼손한다는 문제가 제기돼 ‘납품 단가 조정 협의’로 대체돼 도입됐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비용 절감 등 중소기업의 혁신 의지를 약화하고, 대기업이 오히려 해외 부품업체로 눈을 돌릴 수 있다는 문제점도 지적됐다. 역으로 하도급 계약 기간 동안 원부자재 가격이 인상되지 않고 내려갈 경우에는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게 주기로 했던 납품단가를 깎아도 되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윤 정부 국정 과제에 포함되면서 또 도입 논의가 되살아났다.
이와 더불어 지난 정부에서 공정위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은 사라지고 ‘민간 주도 자율 규제’가 담겼다. 플랫폼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을 민간 자율규제기구를 구성하는 것으로 갈음하고, 플랫폼‧소상공인‧소비자가 상생할 수 있는 자율규제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가령 자율분쟁조정기구를 설치하고 자율규약이나 모범계약서를 마련하거나, 상생협약을 체결하는 식이 될 전망이다. 범정부 플랫폼 협의체를 구축해 민간 자율규제기구 뒷받침하고, 플랫폼 특화 불공정행위 심사지침을 마련하는 등 모니터링을 지속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