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8년 만에 전기요금이 인상되는 가운데, 올 연말 도시가스와 대중교통 등 공공요금이 줄줄이 인상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미 식료품과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9년 만에 물가상승률이 연간 2%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물가 관리를 담당하는 기획재정부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전기요금과 함께, 공공요금의 도미노 인상이 현실화 될 경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들의 물가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기재부는 공공요금 인상 압력을 최대한 억누르고 있는 상황이다. 전기 생산비를 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가 올해부터 시행됐으나 1~3분기 연속 동결한 것도 이러한 배경 탓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에너지·원자재값이 급등하면서 정부의 인위적인 물가 관리에도 한계가 왔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가스에 버스·철도·상하수도까지 ‘줄줄이’ 인상 압박
29일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안팎에 따르면, 최근 기재부는 오는 10월부터 적용할 주택·일반용(민수용) 가스요금을 동결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해,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에 통보했다. 물가안정에관한법률(물가안정법)에 따르면 공공요금 기준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기재부는 산업부와 협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산업부는 이달 중으로 10월 가스요금 인상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해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기재부가 가스요금 동결을 결정한 것은 지난 23일 8년 만에 전기요금 인상을 발표하면서 물가 관리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산업부는 국제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급등으로 요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기재부는 ‘물가 안정’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물가상승이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제도적 안정성도 고려해야 하는 만큼 가스요금의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기재부에 전했다”고 했다.
도시가스의 원료인 LNG 가격은 미국의 허리케인 여파와 겨울철 수요 증가로 고공행진하고 있다. 지난 27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0월물 천연가스 가격은 11.01% 오른 5.70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2014년 2월 이후 최고치다.
유가도 공급 부족 우려가 지속되면서 급등하고 있다. 전날 11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1.47달러(1.99%) 오른 배럴당 75.4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2018년 10월 3일 이후 최고치다. 장중 79.52달러까지 치솟으면서 배럴당 80달러선에 근접하기도 했다.
에너지·원자재값이 급등하면서 공공요금 인상 요구도 잇따르고 있다. 비용 상승과 코로나19에 따른 수요 감소로 적자가 증가하면서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국철도공사는 최근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서 “철도 운임에 대한 현실화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철도공사는 2011년 철도요금을 평균 2.93% 올린 이후 10년간 요금을 동결했다. 특히 철도공사는 지난해 코로나19 영향으로 1조3427억원의 적자를 냈고, 올해도 1조1779억원의 적자를 예상된다. 한국도로공사도 고속도로 통행료 인상을 정부에 건의하겠다는 방침이다. 고속도로 통행료는 2015년 4월 4.7% 인상된 이후 6년째 동결됐다.
버스·지하철·택시 등 대중교통과 상하수도 등 지방 공공요금도 인상 압박도 큰 상태다. 서울에서는 교통카드 기준 기본요금이 지하철 1250원, 시내버스 1200원으로 6년째 유지되고 있다. 인천, 대구 등 주요 광역시에서도 시내버스 요금이 5~6년 간 동결됐다.
◇원자재값 급등, 정부 물가 관리 한계... 소비자물가 2%대 나오나
전기·도시가스발(發) ‘도미노 공공요금 인상’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정부의 연말 물가 관리에도 비상이 걸렸다.
공공요금은 그간 전체 소비자물가보다 낮은 상승률을 보여, 물가를 상대적으로 안정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 따라서 공공요금 인상이 현실화될 경우, 정부의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목표치인 1.8%를 뛰어넘어, 2%를 웃돌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기재부로서는 공공요금이 물가 관리를 위한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이에 기재부가 10월에 이어, 오는 11월 도시가스 요금도 동결을 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기재부는 29일 이억원 1차관 주재로 물가관계차관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 매주 금요일 진행하는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이틀 앞당긴 것이다. 이 자리에서 공공요금 동결에 대해 메시지를 내놓을 지 주목되고 있다.
다만, 기재부의 인위적인 물가 관리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기 요금도 올해 3분기 연속으로 동결을 했지만, 화력발전에 사용되는 유연탄 가격의 급등으로 결국 4분기 전기요금 인상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한전에 따르면, 유연탄 가격은 지난 8월 ㎏당 158.93원으로, 작년 9월 111.1원 대비 43%(47.83원) 증가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해 올해 연간 물가 상승률 전망치가 지난 2012년(2.2%) 이후 9년 만에 2%를 상회할 것으로 보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8.29(2015=100)로 1년 전보다 2.6% 올랐다. 이는 9년 1개월 만에 최대 상승률을 보였던 지난 5월, 7월과 같은 상승폭이다. 특히 5개월 연속 2%대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올해 연간 상승률이 2% 아래로 내려가려면 남은 기간(9~12월) 매달 상승률이 2%를 밑돌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2%로 예상했고, 한은도 올해 물가 전망을 2.1%로 상향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아직 11월 가스요금 등에 대해서는 정해진 바 없지만, 물가 여건을 매우 중요하게 보고 있다”면서 “조만간 부처 차원에서 (공공요금 인상 관련) 입장을 다듬어 전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