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환경부, 민간 내비게이션 업체들은 지난해 협약을 맺고 지도 앱(app, 응용프로그램)과 차량 내비게이션에서 실시간으로 홍수 경보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2023년 14명이 숨진 오송 지하차도 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한 노력이었다. 예상치 못한 도로나 지하차도 침수를 사전에 알려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도록 정부와 민간 업체가 손을 잡았다.
차량 내비게이션에 실시간으로 홍수경보를 표시하는 방법은 침수로 인한 사고를 막는 데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해법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과기정통부의 한 사무관에서 시작됐다. 그는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과기정통부는 물론 환경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등 관련 부처나 전문기관의 도움을 구했다. 무엇보다도 지도 앱과 내비게이션을 서비스하는 민간 업체들을 설득해야 했다.
인사혁신처와 행정안전부는 작년 11월 ’2024년 범부처 적극행정 우수사례 경진대회’를 열고, 제2의 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막기 위한 내비게이션 개선 사업에 대상을 줬다. 정부가 상을 줬지만 심사는 전문가와 일반 국민들이 했다. 사실상 국민이 주는 상이니 공무원에게 더할 나위 없는 영예였다.
과기정통부는 작년 말 송년회를 대신해 워크샵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내비게이션 개선 사업 아이디어를 낸 사무관이 마이크를 잡았다. 과기정통부의 한 간부는 “적극행정 대상을 받은 아이디어를 어떻게 냈고, 실현시킨 과정을 다른 직원들에게 소개해달라는 차원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무관은 과거로 돌아간다면 같은 정책을 내지 않겠다는 깜짝 발언을 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이 사무관은 자신이 낸 아이디어를 실제 정책으로 구현하는 와중에 심한 마음고생을 했다. 사무관이 사업 아이디어를 훔쳤다며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겠다며 언론 플레이까지 하겠다는 민원인의 주장에 시달렸지만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갖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국민의 목숨을 살리는 정책을 냈는데도 민원에 시달렸으니 그 사무관이 얼마나 힘이 빠졌을 지 짐작이 간다.
적극행정 대상까지 받았지만 기업에 비하면 공무원이 받을 수 있는 혜택도 많지 않다. 민간 기업이었다면 연봉의 몇 배에 달하는 성과급을 받고, 특진까지 했겠지만 공무원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과기정통부는 이 사무관에게 부처 차원에서 줄 수 있는 혜택을 최대한 찾아봤다고 한다. 하지만 인사혁신처 등 정부 규정이 정해져 있는 탓에 부처 차원에서 줄 수 있는 혜택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평가 등급을 좋게 받고, 향후 해외 유학 기회를 제공하는 정도였다.
과기정통부 간부는 “정작 적극행정을 잘 해봤자 공무원에게 돌아오는 건 없고, 그로 인해 문제가 생기면 공무원의 커리어(경력)에 큰 마이너스(감점)가 된다”며 “가만히 자리만 지켜도 승진에 문제가 없는 게 공무원 사회인데, 누가 마이너스를 감수하고 적극행정을 하려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얼마 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10년을 일하고 사표를 던진 노한동 씨가 쓴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을 읽었다. 노씨는 이 책에서 공무원 사회를 파고드는 무력감과 좌절감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그는 “입만 열면 ‘적극행정’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저 ‘존버(열심히 버티기란 뜻의 속어 준말)’를 잘한 순서대로 승진시킨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제도다. 정부는 면책 제도를 강조한다. 공무원이 적극행정을 하다 문제가 생기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준다는 말이다. 기업처럼 잘 하면 파격적인 승진을 해주거나 월급의 몇 배에 달하는 상여금을 준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승진이 보장되는 공무원 사회에서 면피성 면책만 강조하니 적극행정을 하는 공무원은 찾아보기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노씨는 “더 이상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을 하지 못 하겠다”며 공무원 옷을 벗었다. 하지만 여전히 현장에는 이 사무관처럼 나라와 국민을 위해 진심으로 열과 성을 다하는 공무원이 아직 많다. 산불 현장에서 쪽잠도 감사해 하던 소방관과 구급대원이 그랬고, 피해 지역에 더 많은 지원을 보낼 방법을 찾느라 사무실에서 밤을 샌 공무원들도 있다. 이런 공무원들이 당당하게 국민이 주는 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고, 확실한 인센티브를 찾아야 한다.
[이종현 과학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