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만난 한 핀테크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 직원은 근무 중 카카오톡 메신저를 여는 게 무섭다고 했다. 인사부가 직원들에게 카카오톡 이용 시간을 문제 삼아 권고 사직을 시킨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카카오톡을 이용했다가는 ‘근태불량’이라는 주홍글씨가 찍힌 채 쫓겨날 판이라는 것이다.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SNS)는 말할 것도 없다.
이 회사는 지난해 연봉 50% 인상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공격적으로 사람을 뽑았다. 채용 전담 직원만 수십명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투자금이 메마른 올해는 딴판인 분위기다. 작년과는 정반대로 온갖 이유를 내세우며 직원들을 해고하고 있다. 저성과자라는 꼬리표를 붙여야 법망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인사부가 직원들의 행적을 샅샅이 감시 중이라고 한다. 혁신을 내세웠던 이 회사가 요즘 보이는 모습은 기존 금융권∙대기업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경기 침체로 길게는 10년 가깝게 이어져온 스타트업 호황기가 막을 내렸다. ‘수영장에 가득 찼던 물이 빠지면 누가 옷을 벗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격언처럼 유망 스타트업 대부분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자신만만하게 혁신을 부르짖던 이들이 경기 침체 앞에서는 제 잇속만 챙기는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불투명한 소통, 책임 전가, 무리한 확장, 일방적 희생 요구 등 회사마다 문제점도 각양각색이다.
2030 세대의 도전과 열정 자본도 허망하게 낭비됐다. 상당수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젊은 직원들에게 과도한 업무와 야근을 직간접적으로 요구했다. 그게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방식이라는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스타트업에 기꺼이 청춘을 갈아 넣었던 인재들이 경기 침체기에 마주한 현실은 불행히도 그 어떤 업계에서보다 냉혹했다. 스타트업이 구시대 기업의 나쁜 모습을 빼닮아가는 모습을 보고 다시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등 전 직장으로 발길을 되돌리는 2030 직원들도 적지 않다. 리더다운 리더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내세웠던 비전이 신기루에 불과했다는 것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기업가치가 업계 상위 대기업의 시가총액을 뛰어 넘는다는 유니콘들의 실적을 살펴보면 수백억원의 적자를 내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대표가 매일 같이 소셜미디어에 혁신을 외쳤던 한 농업 스타트업은 매출 채권을 돌려 막다가 막대한 투자금을 탕진했다. 한 배달 스타트업은 기업가치를 부풀리려고 치킨집 오토바이까지 빌려 사세를 과장하다가 결국 파산해 중견기업에 간신히 팔렸다. 난장판이 된 코인 업계는 굳이 언급할 것도 없다.
2030 직장인들 사이에선 ‘머슴짓도 대감집이 낫다’는 자조 섞인 조소가 나온다. 몇 년 후에는 여러 측면에서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상장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구시대의 악습을 답습하는 모습 만큼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변지희 테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