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대다수 증권사는 올해 유가증권시장(코스피)의 지수가 2700~2800선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새해 시작하고 한 달 만에 코스피지수가 장중 2500선(1월 28일 장중 2591.53)까지 주저앉자 다시 전망치를 수정해 2월에 코스피지수가 2500선까지 미끄러질 수 있다는 전망을 잇따라 발표했다.
2월에 나온 코스피지수 예측치를 증권사별로 보면 키움증권이 2580~2900, 한국투자증권이 2550~2900, KB증권이 2550~2870, 신한금융투자가 2500~2800이다. 작년 말에는 하단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2500선이 많은 증권사에 이제 하단 범위에 포함됐다.
시계를 조금 돌려 보면 증권사의 전망치는 더욱 황당하기만 하다. 지난 2021년 6월 증권사들은 그해 하반기(7~12월) 코스피 지수 예상 범위를 발표했는데, 3300포인트에서 높게는 3700포인트(신한금융투자)까지 지수가 올라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코스피지수는 3200선을 오가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앞으로 더 지수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유튜브에서 ‘염블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염승환 이베스트투자증권 E-Biz 영업팀 부장은 코스피 4000도 불가능하지 않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코스피지수는 급락하기 시작했고 11월에는 2800선까지 하락했다. 연말 마지막 거래일(12월 30일) 종가는 2977.65로 3700, 4000선을 전망했던 증권가의 기대와는 달리 3000선도 회복하지 못한 채 한 해를 마무리했다.
국내 증권사들의 예측이 빗나간 것은 세계적 인플레이션(물가 인상)이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 증권사들이 코스피지수가 3700 이상이 될 것으로 예측하던 때 다수의 외신은 인플레이션 우려가 세계 경제과 금융시장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를 전하고 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급등하는 원자재 가격이 세계 경제 회복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고, 취약한 기업들과 가계 경제를 강타하고 있으며,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를 더욱 키우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국내 증권사들은 장밋빛 전망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인플레이션 우려는 현실이 됐고 그 영향을 받아 지수가 급락하면서 증권사들의 예측은 면구스러울 정도로 빗나갔다. 미국의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보다 7.0% 오르며 1982년 2월(7.1%) 이후 40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올해부터 기준금리 인상과 양적긴축(QT·Quantitative Tightening·연준의 보유 국채 매각) 카드까지 꺼내 들었고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시장에서 흔히 이야기되는 격언 중에는 “시장은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대응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들이 너무도 많고 그 변수들 가운데 한가지라도 변하면 시장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에 시장을 함부로 예측하지 말라는 겸손한 태도를 강조한 격언이다. 그리고 이 말처럼 실제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아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다른 말로 하면 코스피 지수가 1년 또는 6개월은 고사하고 다음 날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다는 의미다.
이렇게 알 수 없는 것을 억지로 예측하면서 증권사들은 많게는 500포인트까지 예측 범위를 넓히며 코스피지수 전망을 발표한다. “하반기에는 2500~3000 사이”라는 식의 두루뭉술한 전망이 나오는 것이다. 이정도까지 예측범위를 넓혀도 맞추지도 못한다.
일부 증권사는 이렇게 불확실한 전망을 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점을 인정하기도 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이런 이유로 2018년부터는 코스피지수의 예측 범위를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된다. 시장에 혼선만을 주는 증권사 증시전망, 이제는 그만할 때가 된 것 아닐까.
[정해용 증권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