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투표와 전자주주총회는 완전히 다른데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재계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이번 상법 개정안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내용은 ‘이사의 충실 의무’가 주주로 확대되는 부분이지만, 당장 상장사의 부담을 키우는 내용은 따로 있다. 바로 상장사가 전자주주총회를 반드시 병행하도록 규정한 부분이다.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자산 2조원 이상의 대기업은 당장 법 공포 1년 뒤부터 전자주주총회를 병행해야 한다.
정부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땐 시범 사업이란 걸 이용한다. 이전에 없던 제도를 도입하면 현장에선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자주주총회 시행은 예외다. 만약 상법 개정안이 공포되면 얼마간의 유예 기간이나 시범 사업 없이, 자산 규모 2조원 이상 대기업은 1년 뒤 바로 치러본 적도, 시스템도 없는 전자주주총회를 의무적으로 열어야 한다.
주주총회에서 전자투표를 통해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주주총회를 온라인으로 생중계하는 경우는 있지만, 전면적인 전자주주총회가 시행된 사례는 아직 없다.
아직 전자주주총회를 열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다. 전자투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예탁결제원이 이제서야 전자주주총회 플랫폼 구축에 나서고 시범 운영을 준비 중인 상황이다. “해킹 위험이 있을 수도 있고, 실시간 의결권 행사 과정 중에 오류라도 발생하면 어떡하느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개인 투자자로서 내심 상법 개정의 취지에 공감하고 있는 나조차도 “정말 당황스럽다”라는 기업 관계자의 말이 단순한 엄살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표결 등 시스템이 완성되지 않은 의사결정 기관’은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된다. 구성원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을지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혹시 주주들이 의결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긴다면? 주주들이 부정 투표 가능성을 제기한다면? 500만명의 주주들이 있다는 삼성전자 같은 국민주의 전자주주총회도 감당할 수 있을까. 특히 소액주주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시점에서 조금이라도 어설픈 지점이 있다면 곧바로 소송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주주총회를 온라인으로도 진행할 수 있도록 개정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필요한 일이다. 실제로 전자주주총회가 활성화되면 동시에 여러 회사에서 주주총회를 여는 ‘슈퍼 주총 데이’에도 주주들이 물리적 제약 없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을 때 이 제도가 무사히 안착할 수 있는 준비작업은 무성의하다는 점이다.
소액주주 입장에서도 전자주주총회를 마냥 반길만한 일이 아니다. 현장 주주총회를 아예 개최하지 않고 완전 전자주주총회를 열게 될 경우, 소액주주들이 질문을 하거나 의견을 낼 수 있는 창구가 아예 묵살될 가능성도 있다. 한 국회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기업이 전자주주총회를 통해 소액주주의 의견을 억압한다는 보고서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23년 법무부가 전자주주총회 개최를 담은 상법 개정안을 내놓았을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일반 주주의 권리 보호를 강화하고, 경영하기 좋은 기업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취지를 밝혔지만 이쯤 되면 대체 무엇을 위한 급박한 개정이었는지 하는 의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