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은 기자

최근 시장에서 회자된 막대그래프가 있다. 올해 1월 2일부터 3월 20일까지 ‘서학개미(미국 주식 개인 투자자)’의 미국 개별 종목과 상장지수펀드(ETF) 순매수 규모가 102억달러(약 15조원)로 분기 기준 역대 최고치라는 내용이다.

블룸버그는 관련해 서학개미가 테슬라와 같이 올해 들어 주가 낙폭이 큰 개별 종목은 물론 기초 지수의 일일 상승·하락률을 수배 추종하는 레버리지 ETF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했으며 성과가 좋지 않다고 전했다. 공교롭게도 국내 시장을 떠나 미국 시장으로 향한 서학개미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동안 미국 증시가 조정을 겪은 까닭이다. 미국 주식 커뮤니티 등에선 서학개미가 투자를 늘릴 때가 하락장 경고 신호라는 평가가 나왔다.

한국 개인 투자자의 분기별 미국 주식 순매수 규모. /블룸버그·LS증권

그런데도 개인 투자자는 쉽게 국내 증시로 돌아오지 않는다.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소수 주주의 이익과 반하는 쪼개기 상장이나 대규모 유상증자 등으로 잃어버린 신뢰를 단기간에 회복하기 쉽지 않다.

한편으로 미국 시장에서 각종 고위험 레버리지 ETF를 쓸어 담는 개인 투자자를 보면서 국내 증시의 상품 다양성이 부족한 문제도 하나의 원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 ETF 시장 규모는 4년 새 3배 넘게 늘었다. 상장된 ETF 숫자가 962개다. 하지만 비슷한 기초지수를 추종하는 베끼기만 빈번하다는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ETF 상품을 개발하는 자산운용사는 자신들이 게으른 탓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새로운 구조의 상품을 내놓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했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한국거래소에 신규 ETF를 들고 가면 설명도 다 듣지 않고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는 핀잔을 듣는다”고 토로했다. 다른 자산운용사 임원은 “신규 ETF 관련 보고서를 냈지만, 금융당국으로부터 1년 넘게 제대로 된 검토 의견을 못 받았다”고 했다.

눈치 보기가 횡행한다. 삼성자산운용이 국내 최초로 출시한 버퍼 ETF를 두고 다른 자산운용사들의 생각을 물었을 때 검토 중이라고만 했다. 상품의 매력 문제가 아니라 “혹시나”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버퍼 ETF는 주가 하락 때 손실 ‘일부’를 ‘완충’해 주는 것이 핵심인데, 투자자가 손실을 ‘보전’해 주는 개념으로 오인할까 봐 걱정이라는 취지였다.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를 비롯한 관계 기관이 투자자 보호에 힘쓰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금융투자상품에 적절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을 넘어 위험도가 높거나 상품 구조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아예 막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혁신을 두려워하는 시장은 개인 투자자의 더 큰 외면을 불러오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뿐이다.

더 다양한 구조의 ETF와 금융투자상품이 문턱을 넘어 시장에 들어오길 기대한다.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일이 투자자 보호에도 보탬이 될 수 있다. 최소한 개인 투자자가 미국 시장까지 가서 하락장 경고등이라고 조롱받는 상황이 투자자 보호에 부합하는 일은 아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