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돌아왔다. 그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고 2기 행정부 출범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오자 전 세계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각 산업군별로 온갖 가능성이 제기되며 유·불리가 점쳐졌다. 트럼프 1기보다 자국 중심주의 정책에 더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이면서도 미래가 확실하게 그려지는 업종이 없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여서,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커졌다.
배터리·반도체와 함께 세계 주요 미래 먹거리로 떠오른 바이오도 혼란에 빠졌다. 의료비 지출 절감을 위한 약가 인하 기조를 예고한 가운데 중국 기업을 저지하는 게 핵심인 생물보안법 통과도 연내 예정돼 있어 업계에 적잖은 지각 변동이 예상된다. 지금보다 경쟁이 과열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경쟁 과열이 예상되는 대표적 분야는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다. 고가의 오리지널 의약품을 대체하는 복제약은 약가 인하 정책의 주요 수혜 업종으로 꼽힌다. 그러나 산업연구원은 그만큼 바이오시밀러 경쟁 과열이 예상돼 국내 업계가 지금 수준보다 경쟁력을 높여 대비가 필요하다고 봤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셀트리온(068270) 등 이미 미국 시장에서 처방 데이터를 쌓으며 기술을 입증한 대기업이 아니라면 경험이 부족할수록 시장 진입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바이오시밀러 생산을 전담하는 위탁개발생산(CDMO)도 마찬가지다. 생물보안법 통과로 세계 CDMO 3위 기업인 중국 우시가 미국에서 퇴출되면, 이 몫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CDMO 업체들의 수주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다. 업계는 우시의 최대 경쟁자인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는 수혜를 입는다고 예측했다. 하지만 1위인 스위스 론자, 2위 미국 캐털란트 등이 저마다 앞다퉈 생산시설을 늘리며 대비에 나선 만큼, 경쟁력 강화에 총력을 다해야 하는 때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캐털란트는 곧 비만 치료제로 부상한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의 지주사인 노보홀딩스에 인수될 예정이다. 심성바이오로직스 바로 뒤에서 추격하던 일본 후지필름도 경쟁자가 될 수 있다.
여기에 트럼프가 ‘백신 회의론자’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지명하면서 혼란을 키웠다. 케네디는 반(反)백신 단체를 설립해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폈다. 에이즈, 항우울제, 줄기세포 등과 관련한 음모론도 일삼았다. 이런 그가 보건복지 정책을 맡아 업계에 좋은 영향을 줄지는 물음표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트럼프 시대를 맞아 불확실성 속에서 우위를 선점하기엔 아직 준비가 덜 됐다. 지난 9월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이 발표한 2024년 상반기 제약시장·임상시험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신약개발 프로젝트(파이프라인)는 총 3233개로 미국(1만1200개), 중국(6098개)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그러나 연구 단계별로 보면 후보물질 이하(69.3%)·비임상시험(19.7%) 단계가 가장 많고, 후기로 갈수록 비율은 현저히 낮다. 지금까지 국산 신약으로 허가를 받은 품목은 37개에 불과하며, 지난 5년간 허가를 받은 의약품은 7품목에 그친다. 그마저도 대부분 국내용이었고 세계 시장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다.
업계가 새로운 경제 질서를 홀로 감당하기엔 부담이 너무 크다. 그만큼 정부의 역할이 절실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이끄는 국가바이오위원회가 다음 달 출범한다. 국무총리실을 필두로 질병관리청,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련 부처와 전문가로 꾸려진다. 이들이 가장 우선으로 둬야 할 목표는 바이오 생태계 발전이다. 우리 기업들이 새로운 체제에서 힘을 잃지 않도록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 해외 수준에 맞춘 규제 완화, 세제 혜택, 연구개발(R&D) 지원, 국내외 사업 연계 등 다양하다. 지금이 바이오 생태계를 키울 마지막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