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주주가 경영권 프리미엄을 독점하는 동시에 비지배주주가 회사로부터 강제 축출되는 것을 허용하는 법·제도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와 개선책 마련이 필요하다.”
“자본시장 선진국들의 경우 지배주주의 경영권 이전 상황에서 일반주주들이 부당하게 차별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의무공개매수 제도, 비지배주주의 다수결 동의 제도를 도입하거나 지배주주의 충실의무와 같은 판례 법리를 적용해 일반 주주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있다.”
요약하면 대주주와 소액주주를 차별하지 말라는 의미다. 위 발언은 금융당국이나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정부 관계자 발언이 아니다. 지난해 2월 ‘강성부 펀드’로 불리는 사모펀드(PEF) 운용사 KCGI가 오스템임플란트 공개매수에 응하면서 배포한 보도자료 중 일부다.
강성부 KCGI 대표는 소액주주를 등에 업고 컸다. 본인은 그리 생각하지 않을 수 있지만, KCGI가 성장하는 데 ‘소액주주를 위한다’는 명분이 밑거름이 됐다. 공과(功過)가 공존하지만, 어쨌든 한국 대표 행동주의 펀드 하면 KCGI다.
행동주의가 힘에 부쳤던 탓일까. KCGI는 체질 개선을 꾀했다. 소수 지분 투자를 넘어 본격적으로 경영권 인수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가 최근 점찍은 대상은 한양증권(001750). 지난달 지분 376만 6973주(약 29.6%)를 2200억원에 사들였다.
주목할 점은 KCGI가 한양증권을 사들인 주당 단가가 5만8500원이라는 점이다. 매각설이 돌기 전 한양증권 주가가 1만1500원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300%가 넘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줬다. 분명 최대주주나 소액주주나 같은 의결권을 갖는다는데, 어째서인지 주식값은 3배 차이가 났다.
소액주주 지분에 대한 공개매수는 당연히 없었지만, 혹시나 싶었던 것인지 주가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한양증권은 매각설이 나오기 전 1만원대 초반이었으나 매각 공식화 직후인 7월 14일 1만7210원까지 올랐고, 8월 5일에는 1만9410원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한바탕 잔치가 끝난 뒤인 지금은 다시 1만3000원대로 내려앉았다. 계좌를 열어본 소액 주주들은 허탈한 마음뿐이다.
사실 KCGI의 말이 아닌 행보를 돌이켜보면 놀랍진 않다. KCGI는 그간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내세웠지만, 중요한 시점마다 차익 실현에 초점을 둔 결정을 내렸다. 한진칼(180640) 주식도 당초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매각했고, 오스템임플란트와 DB하이텍(000990)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KCGI는 지배구조 개선이란 명분이 더 이상 먹히지 않을 것이라 알아차리고 변화에 나선 것일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일부 소액주주는 매각이 무산됐으면 좋겠다는 반응마저 내놓고 있다. 차순위협상자였던 LF(093050)가 차라리 더 소액주주를 위해줄 것 같다는 기대에서다. 이들은 금융당국만 바라보고 있다.
실제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남았기 때문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두산(000150)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증권신고서 정정’이란 무기로 사실상 반려한 적이 있다. 이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이 어쩌면 월권이었을 모를 이 원장의 결정뿐이라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