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집만 가는 단건 배달비가 묶음 배달보다 비싸다는 공시는 의미가 없다.”
지난달 31일 정부가 발표한 배달비 공시를 본 배달업계 한 임원은 “볼 필요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주문 1건만 처리하는 단건 배달은 3~4건 주문을 모아 처리하는 묶음 배달(일반 배달) 대비 배달 기사 수급에서부터 차이가 나 배달비가 높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치솟는 외식물가를 잡겠다며 꺼낸 ‘배달비 공시제’가 시행 두달 만에 배달업계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의 월별 배달비를 모두 공개해 가격 인하를 유도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지난 3월 31일 나온 배달비 공시의 조회수는 900명대 수준에 머물렀다.
정부의 안일한 배달비 조사가 외면으로 이어졌다. 현재 정부는 소비자단체협의회(소단협)에 배달비 조사를 위탁한 후 한달에 2회 서울시내 1개 동을 정해 배달비를 조사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치킨, 분식을 배달 앱 내 장바구니 담아 배달비를 보고 이를 발표하는 식이다.
이는 배달비의 한쪽면 밖에 보지 못한다. 일반 배달 기준 각 음식점은 배달 앱에서 배달 주문을 받은 뒤 배달대행업체로 넘겨 이를 처리한다. 이때 배달비는 배달대행업체가 책정해 음식점에 통보한다. 이 배달비를 음식점이 일부 소비자에게 부담케 하는데 이게 공시되는 것이다.
단건 배달은 더 복잡해진다. 일반인을 직접 배달 기사로 모집하는 만큼 배달 앱이 배달비를 산정하지만, 날씨나 시간대에 따라 변동 폭이 크다. 주문이 몰리는 데 배달 기사가 없으면 배달비를 높이는 방식으로 시시각각 대응한다. 정부는 이를 월 2회 조사로 파악하고 있다.
결국 정부가 배달 앱 장바구니에 담아보는 배달비는 진짜 배달비가 아닌 ‘반쪽짜리’인 셈이다. 아울러 정부는 각 프랜차이즈의 상호명을 배달비와 함께 공개하지도 않고 있다. 프랜차이즈별 배달비 부담의 차이를 확인해 주문 시 참고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표도 가려져 있는 것이다.
제공되는 정보는 그야말로 부실하다. 지난달 31일 발표된 배달비 공시는 “배민1(단건 배달)에서 최고 배달비가 가장 많았고, 배민(일반 배달)에서 최저 배달비 사례가 가장 많았다”였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정보가 없어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었다”고 인정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가 공시를 통해 노렸던 가격 인하 효과는 이미 사라졌다. 정부가 소단협을 통해 ‘소비자 부담 배달비’를 처음 발표한 지난 2월 25일 이후 쿠팡이츠와 배달의민족은 각각 단건 배달 배달비를 기존 5000원 프로모션을 종료하고 6000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정부는 더 적극적인 가격 조사에 나서야 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배달비를 시장 장바구니 물가 점검하듯 관리해선 안 된다. 소비자 부담 배달비가 아니라 배달 앱과, 배달대행업체 등 배달비 책정 주체가 배달비를 어떻게 정하고 분담하는지를 조사·공시해야 효과를 낼 수 있다.
배달비 고공행진의 근본 원인도 찾아야 한다. 단건 배달의 등장으로 배달 기사 수요는 늘었는데 공급이 한정돼 있는 것이 가장 크지만, 전부는 아니다. 배달 앱과 배달대행업체는 배달 기사에 지급하는 처우 개선비, 보험료 등 비용도 모두 배달비로 산정하고 있다.
처우 개선비, 보험료도 외식 물가를 올리는 주요 변수다. 배달비에 산입돼 음식점에 부과된 이들 비용이 다시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식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배달비 공시제에 투입할 예산이나 노력을 차라리 배달 기사 보험료 지원에 쓰는 게 나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정부는 그러나 한 걸음 물러나는 방식을 택했다. “급격히 상승한 배달비를 안정화하기 위해 매달 배달비를 조사해 공개하기로 했다”던 기획재정부는 최근 “공시는 정보 제공 차원이었다”고 말을 바꿨다. 당초 목표했던 외식물가 잡기는 커녕 배달비조차 잡기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