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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공개돼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는 충분히 살 수 있는데도, 적시에 의사를 만나지 못한 환자가 결국 죽음을 맞는 이야기다.

이야기 속 외상외과 전문의 백강혁은 사명감 있는 소위 ‘돌아이’로 그려진다. 그는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는 의사로서 당연한 일을 하지만, 그마저도 현실의 벽에 부딪혀 고군분투해야 한다.

원칙대로라면 환자는 골든아워 60분 안에 중증외상 치료가 가능한 병원에 도착해야 한다. 곧 이어 수술방과 중환자실, 마취과, 혈액은행, 의료진 등이 신속히 투입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이런 당연한 원칙이 쉽게 무시된다.

최근 스타트업 업계가 겪는 현실도 원칙이 무너지는 드라마 속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충분히 살 수 있는 스타트업들이 ‘12.3 계엄’ 사태 이후 갑자기 투자가 중단되면서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최근 2~3년간 꽁꽁 얼어붙었던 투자시장이 조금씩 살아날 기미를 보였는데, 정치 리스크가 언 발에 찬물을 부은 격이다.

벤처투자플랫폼 더브이씨에 따르면 기존 투자 유치 이력이 있는 스타트업 중 지난해 폐업한 회사는 170곳으로 직전년도 대비 26곳(13.5%) 증가했다. 2021년 104곳, 2022년 126곳에 이어 매년 증가 추세다.

얼마 전 만난 한 액셀러레이터(AC) 대표는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수백억원의 투자를 받기로 했는데, 계엄 사태 이후 갑자기 연기하더니 결국 투자가 취소됐다”고 토로했다.

기업가치 10억 달러(1조4400억원)를 넘어선 유니콘 스타트업도 크게 줄었다. 지난해에는 리벨리온과 에이블리 2곳만 인정받아, 직전연도(2023년)의 절반에 불과했다.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기업을 도와주진 못할망정, 정치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게 일상이다. 물론 제대로 된 사업 성과 없이 정부 돈만 좇는 ‘좀비 스타트업’도 있고, 이들 탓에 ‘죽음의 계곡’을 건너온 기술력 있는 스타트업이 피해를 보기도 한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불장난’으로 멀쩡한 기업이 갑자기 위기에 몰리는 현실은 느닷없다.

정부는 ‘권한대행’ 체제라고 해서 손 놓고 있어선 안 된다. 정부와 국회가 헝클어 놓은 탓에 갑자기 죽음의 문턱까지 간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이 적시에 이뤄져야 한다. 투자 약속을 해놓고, 계엄과 탄핵 정국을 이유로 투자를 미루는 외국인 투자자에는 “대한민국은 굳건하다”고 정부가 직접 나서서 설득해야 한다.

원칙대로 흘러가지 않는 스타트업의 현실 속에서 백강혁을 떠올려본다. 어떠한 정치적 고려 없이 기업가 정신과 모험 투자로 이뤄지는 이 생태계의 원칙에 충실한 ‘돌아이’들이 스타트업 생태계를 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