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만 증권부장

중소형 증권사 교보증권은 CFD(차액결제거래) 계좌 예탁자산이 2017년만 해도 거의 없었다가 2019년 8230억원, 2021년 2조1554억원으로 빠르게 늘었다. 라덕연 씨 일당의 주가 조작 사태로 널리 알려졌다시피 CFD 계좌를 사용하면 매매 내역이 ‘외국인’으로 잡힌다. 교보증권 한곳에만 2조원이 넘는 자금이 단지 외국인 매수인 척 속이고자 CFD 계좌로 들어온 것일까. 우리나라 개미들은 모두 작전의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CFD 고객들은 다른 목적 때문에 계좌를 개설했다. 바로 ‘대주주 양도세’다.

여기서 말하는 대주주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상장기업의 최대주주가 아니다. 과세 대상 개념의 대주주다. 한 종목을 10억원 이상 보유하고 있으면 대주주로 등재돼 주식 매도 시 양도세를 추가로 내야 한다. 게다가 작년까지는 직계존비속, 즉 가족 합산이었다. 집안이 돈 좀 있다고 하는 경우 본인도 모르게 대주주가 돼(부친 혹은 자녀와 같은 종목을 보유한 경우 등) 억울한 세금을 내야 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는 이 대주주 기준을 3억원까지 낮출 방침이었다. 증권사의 CFD 계좌 마케팅이 제대로 먹혔던 이유다.

CFD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차액만 결제하는 상품이니만큼 실제로는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돼 대주주 양도세에서 제외된다. 수많은 자산가가 비싼 이율을 물면서 CFD 계좌를 개설한 이유다.

결국 비합리적인 대주주 양도세 제도가 없었다면 CFD는 굳이 우리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을 상품이다. 설령 태어났더라도 큰 인기가 없었을 것이다. 라덕연 씨 사태도 일어나지 않았거나, 일어났더라도 훨씬 일찍 들켰을 가능성이 높다. 주주명부만 폐쇄하면 실명 리스트가 주욱 뜨니까 말이다. 실제로 라씨 일당이 주가를 끌어올렸던 기업 중 한 곳은 주주명부를 폐쇄하고 주가를 끌어올린 주주가 누구인지 조사한 적이 있다고 한다. CFD 계좌 주주는 명부에 ‘SG증권’으로만 뜬다. 이 때문에 더 이상 조사할 수 없었다고 한다. 라씨가 CFD를 이용하지 못했다면, 주가 조작 규모가 지금처럼 커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CFD뿐만이 아니다. 최근 주식시장에서 화제가 되는 한국 증시의 괴이한 현상은 대부분 과세 제도 때문에 일어난다. 대주주 양도세를 피하려고 연말에는 개인이 주식을 대량 매도하는 현상, 중견기업이 증여세나 상속세 부담을 피하고자 사실상 사모펀드에 지분을 ‘파킹(진성매각이 아니라 매각한 척 포장하는 행위)’하는 행위, 상속의 어려움 때문에 지주회사 주가를 고의로 억누르는 것, 혹은 의도적으로 주가 부양에 나서지 않는 것, 자녀 명의 회사에 알짜 사업을 몰아주는 것, 건설업계에서 최근 벌어진 벌떼입찰 등. 우리가 아는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문제점 상당수는 잘못된 과세제도로 인해 태어났다.

한차례 세금을 냈는데, 이익이 크다는 이유로 다시 추가 과세하는 제도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납세자 입장에서 저항감이 클 수밖에 없다. CFD의 비극을 낳은 대주주 양도세는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으로(비록 유예됐지만) 폐기되는 수순이라 다행이다. 이제 남은 것은 금융소득 종합과세다.

일각에서는 배당소득세만이라도 분리과세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배당소득도 다른 금융소득과 마찬가지로 15.4%의 세금을 내는데, 자산가의 경우 다른 금융소득과 합쳐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추가(최대 45%)로 납부해야 한다. 이를 분리과세로만 해줘도 수많은 상장사 오너가 자녀에게 지분을 물려줄 때 배당을 늘리는 ‘정공법’을 택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배당을 늘리면, 투자 매력이 높아져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 조금은 감소할 것이다.

[안재만 증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