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 거래가 없던 우리 동네 아파트가 지난달 거래됐다.

직전 거래가격보다 3억원이나 싸게 팔렸다. 충격이 강할수록 이를 사실로 인정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아파트 매매 호가는 고점을 유지하고 있었고, 거래가 없었던 탓이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당장 ‘증여·상속 등 특수 거래다’, ‘해외에 나가면서 처분한 초급매물’이란 말이 돌았다.

해당 거래에 대해 무심해질 무렵 우리 동네 아파트가 또 거래됐다. 이번에는 전 거래보다 5000만원이 더 싸게 거래됐다. 급락한 실거래가가 두번 찍히자, 동네 주민들도 증여·상속 같은 특수거래란 말이 쑥 들어갔다.

부동산 경기를 수요자가 피부로 느끼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올 들어 서울 아파트 일평균 거래량은 약 40건에 불과해, 아파트 가격이 떨어졌다는 말은 있어도 내가 사는 아파트의 실거래는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아파트 값이 하락할 거란 건 대다수 사람들이 예상했던 일이다. 애초 너무 올랐고, 계속 오를 리도 없다. 다만 지금처럼 가파르게 아파트 값이 떨어질지는 예상치 못했다. 급등하는 물가로 대다수 사람들은 대출 원금을 줄이지 못했고, 금리 인상으로 이자는 더 늘었다. 집 한 채 갖고 있는 입장에서 당장 생활이 달라진 것은 없지만, 자산 가치가 하락했다는 말은 누구에게나 기운 빠지는 일이다.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은 과거에도 다이내믹했다. 한번 하락장세가 시작되면 ‘깡통주택’이니, ‘깡통전세’니 말이 나올 정도로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하고, 오르기 시작하면 2~3배씩 상승해 아무리 고삐를 죄도 소용없다.

정권이 바뀌거나, 경기 침체가 시작되면 부동산 시장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때마다 정부는 설익은 대책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은 정부 생각과 달리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원리가 즉각적으로 작용되지 않는다. 공급 측면에서 보면 주택 공급은 인허가, 분양, 공사, 입주 등 여러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당장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 지금 주택을 구입하려는 수요자들에게는 수년 뒤에 있을 공급은 아무 의미가 없다.

부동산 수요를 억제하는 것도 효과가 없긴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미 문재인 정부에서 반복해서 내놓은 부동산 수요 억제 정책을 보고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 오래전부터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학습한 수요자들은 부동산 규제를 강화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시장 흐름이 바뀌거나, 정권이 교체되면 규제를 전부 풀 것으로 예상하고 이에 맞춰 행동할 뿐이다.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 정책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 첫해부터 풀었던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의 효과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 작동했다. 이런 상황을 지켜봤음에도 현 정부 역시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에 들어가자 과거 정부의 부동산 규제를 계속해서 풀고 있다. 올 들어선 1·3 대책과 노후도시 특별법을 발표했다. 이달부터는 다주택자도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게 허용했다.

자산가치가 가파르게 하락하는 지금 정부가 규제를 완화해도 아파트 구매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지 의문이다. 실수요자를 위한 규제 완화라고 하지만, 실수요자들 역시 아파트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야 구매에 나서게 된다.

부동산 정책의 방향키는 적어도 5년 이상의 장기적인 계획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 이전 정부의 단기 땜질식 부동산 대책과 시행착오가 현재 부동산 시장의 침체 원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실수요자를 위한 야심찬 부동산 대책도, 시간이 지나면 시장에 부메랑이 돼 혼란만 가중시킬지 모를 일이다. 부디 이런 걱정이 기우로만 끝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