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창업자 겸 전 총괄프로듀서(PD)가 하이브에 자신의 지분을 넘기고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나다시피 물러났다. 발단은 SM이 매년 이 전 PD의 개인회사인 라이크기획에 매출의 6%를 로열티로 주는 불합리한 계약에 주주들이 반발한 것이었지만, 결정타는 SM 이사진이 이 전 PD 몰래 카카오를 대상으로 신주·전환사채를 발행하기로 한 것이다.

그간 SM이 라이크기획에 로열티를 주는 것이 불만이었던 주주들은 이 전 PD의 퇴진을 반기겠지만, 이사진이 최대주주의 뜻에 반해 다른 기업과 손잡고 그들에게 신주·전환사채를 대규모로 발행해 경영권을 넘기려 한 것은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법원이 카카오의 신주·전환사채 인수를 허용하면 카카오는 SM 지분 9%를 취득하게 돼 단숨에 2대 주주로 오른다. 카카오는 SM의 경영권 인수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번 SM 사태는 최대주주라도 회사에 불합리한 계약을 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과 함께 오너(Owner·소유권을 가진 사람)의 경영권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새삼 일깨워줬다. 지금까지는 외부 세력의 공격만 대비하면 됐는데, 내부 이사진도 최대주주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SM이 보여줬다.

한국은 상속세율이 최대 60%여서 세대를 거치면 오너가(家)의 지분율은 급속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 한 주당 여러개의 의결권을 인정하는 차등의결권제가 없어 오너가는 시간이 갈수록 지분이 줄어드는 만큼 의결권도 줄게 된다. 오너가의 의결권이 줄어든 상황에서 SM의 사례처럼 내부 이사진이 외부 세력을 주요 주주로 들여오는 게 가능해지면 오너 경영 체제는 큰 위기를 맞게 된다.

오너 체제가 기업에 더 좋은가, 전문 경영인 체제가 더 좋은가에 대한 답은 없다. 이재용, 최태원 회장보다 경영 능력이 좋은 사람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만큼 큰 부담을 갖고 삼성전자나 SK그룹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개인의 능력 차이를 제외하면 더 부담을 갖고, 더 고민하는 사람이 기업에 도움이 될 결정을 할 가능성이 크다.

기업의 불합리한 지배구조를 고쳐 가치를 높이겠다는 주주 행동주의 운용사들도 언젠가는 주식을 팔고 떠난다. 이들이 아주 먼 미래를 보고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긴 쉽지 않다. 한 집에서 평생 살아야 하는 사람은 몇 년 뒤를 생각하면서 빚을 내 집을 고치지만, 월세 세입자는 이 집의 몇 년 후 모습을 생각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2000년대 초 SK그룹을 공격한 소버린자산운용이나 2016년에 삼성전자를 위협한 헤지펀드 엘리엇이 경영권을 가져갔다면 지금 SK그룹이나 삼성전자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일각에서는 차등의결권 등을 도입해 경영권에 안전장치를 마련해주면 오너들이 지금보다 더 일반 주주를 신경쓰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것이란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경영권 안전장치는 여러 장점이 있다. 우선 주인없는 회사가 되는 운명을 막을 수 있다.

한국 기업은 지금처럼 상속세를 내다 보면 언젠가는 오너가가 사라지고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 투자자가 주요 주주가 될 수밖에 없다. 현재 은행이 대표적으로 이런 구조인데, 은행은 경영진이 주주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주인-대리인 문제’가 고쳐지지 않고 있다.

주가에도 긍정적일 수 있다. 한국 기업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나 주가수익비율(PER)이 선진국 기업보다 낮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오너 입장에서 봤을 때 주가가 낮은 게 경영권 승계에 유리한 점이다. 주가가 높으면 상속·증여 부담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에 주가를 낮게 유지하고 싶은 유인이 생긴다. 경영권 승계 문제가 해결되면 주가를 굳이 낮게 유지할 이유가 사라진다.

앞으로 주주 행동주의의 목소리는 더 커져 기업의 경영권 위협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경영권이 위협 받는 상황은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액주주의 권리 보장만큼 안정적인 경영권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차등의결권 제도나 포이즌 필(poison pill) 등 경영권 안전장치를 도입한 기업은 배당을 늘리거나 위법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식으로 오너와 일반 주주 간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전재호 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