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 행정부로부터 전방위 압박을 받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대만 TSMC가 미국 내 첨단 공장 건설에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9일 대만 현지 언론에 따르면 TSMC는 당초 내년 착공 예정이었던 미 애리조나 세번째 공장의 설립 일정을 앞당겨 올해 6월 착공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계획대로라면 3공장에 도입되는 2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 양산 일정도 2030년에서 2028년 3분기로 앞당겨지게 된다. 업계 최첨단 파운드리 공정이 미국 땅에 빠르게 뿌리내리게 되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TSMC의 이 같은 계획이 현실화할 경우, 첨단 파운드리 공정을 주도하고 있는 대만과 미국 현지 팹 간 기술 격차가 빠르게 좁혀질 것으로 내다봤다. 애리조나 팹은 TSMC가 650억달러(약 93조5600억원)를 투자해 해외에 처음 지은 첨단 공정 제조공장으로, 첫번째 공장에서는 올 1분기부터 4나노 공정 웨이퍼 대량 양산에 돌입했다. 4나노는 TSMC가 대만에서 2021년 상반기에 도입한 공정이다. TSMC는 당초 미국 첫번째 공장에서 최대 고객사인 애플과 엔비디아의 4나노 칩을 생산한 뒤, 추가 팹 두 곳을 각각 올해와 내년에 착공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올해 두번째 공장 착공에 돌입한 뒤 해를 넘기지 않고 잇따라 세번째 공장을 바로 짓는 계획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공장 설립 가속화에 따라 2나노 양산 시점도 당초 예상보다 1년반가량 빨라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3나노 공정을 도입할 애리조나 두번째 공장은 2027년 3분기에 양산을 시작하고, 세번째 공장은 그로부터 1년 후인 2028년 3분기에 2나노 공정을 양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파운드리 업계 최선단 공정인 A16(2나노)이 2026년 하반기 TSMC 대만 공장에서 처음으로 양산될 예정인 점을 감안하면, 대만과 미국 간 첨단 공정 기술 격차는 불과 2년 안팎으로 좁혀지게 된다.
이 계획을 두고 업계는 실현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보고 있다. TSMC가 당초 도입하기로 했던 공정을 앞당기는 건 트럼프 행정부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정책 기조를 따르면서도 TSMC 눈앞에 놓인 다른 선택지보다 부담이 덜하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 고관세 등을 앞세워 해외 기업들의 미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을 압박하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 반도체 산업 재건을 위해 경영 위기를 겪고 있는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부 지분 인수를 TSMC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고객사로부터 매출의 70% 이상을 내고 있는 TSMC는 미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독립 경영 원칙을 고수해 온 TSMC 입장에서는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부를 떠안는 것보단 선단 공정 도입 가속화, 첨단 패키징(후공정) 설비 구축 등 애리조나 공장 투자 확대로 미 정부와 협상을 벌이는 게 더 유리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만 언론은 미 현지 건설 인력의 숙련도가 높아진 데다 미 정부의 지원으로 애리조나 두번째 공장에서 2027년 3분기부터 3나노 칩을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후 2028년 3분기는 차기 미 대통령 선거 국면과 맞물려 있어 세번째 공장에서 2나노 양산을 돌입하기에 최적의 시점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이에 일각에서는 TSMC가 오는 6월에 미 세번째 공장 착공식을 대대적으로 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업계에선 트럼프 대통령도 착공식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TSMC는 이에 대해 공식 답변을 내놓지 않았으나, 공장 건설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