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2016년 7월 도쿄에서 기업 실적을 설명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손정의(일본명 손마사요시)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의 자회사 ARM이 반도체 설계 디자인만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에서 자체 칩을 내놓는 방향으로 기업 정체성에 변화를 줄 것으로 알려지면서 세계 반도체 업계에 미칠 파장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모바일 반도체 시장의 숨은 지배자로 불리는 ARM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칩의 90% 이상이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할 정도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자랑합니다.

◇ 손정의 품에서 확 달라진 ARM

ARM은 전통적으로 모바일, 자동차, 사물인터넷(IoT) 등 다양한 분야의 반도체 설계자산(IP)을 판매하는 방식의 ‘박리다매’식 사업 모델을 지향해왔습니다. 지난 10여년간 ARM이 직접 칩을 설계하거나, 자체 제작 칩을 내놓을 수 있다는 우려가 종종 제기됐지만, ARM은 ‘고객사와 경쟁하지 않을 것’이라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이를 일축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2016년 손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그룹이 ARM을 인수한 이후 회사의 사업 성격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반도체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저전력 설계에 특화한 ARM 역시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서버, 데이터센터 등 고사양 설계에 필요한 라이선스를 잇달아 개발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챗GPT, 딥시크 열풍으로 AI 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하면서 더 파격적인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서 파이낸셜타임스는 14일(현지시각) 소식통을 인용해 ARM 최고경영자(CEO)인 르네 하스가 이르면 오는 여름 자체 제작한 첫 칩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습니다. ARM은 새로운 칩의 첫 고객으로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플랫폼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모바일 일변도 사업 다각화… AI 시장 경쟁자로 참여

ARM이 갑작스럽게 노선을 변경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우선 AI 반도체 열풍과 함께 급격하게 확산하고 있는 AI 칩 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기 위한 포석이라는 설명입니다. 업계에서는 ARM의 자체 칩 출시가 향후 AI 칩 생산으로 전환하려는 더 큰 계획의 일환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실제 ARM의 첫 작품은 대규모 데이터센터의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경우 모바일 시장에서 삼성전자, 애플, 미디어텍, 퀄컴 등 핵심 고객사와 직접적인 경쟁 관계에 놓일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입니다. ARM의 비주력 사업인 서버용 칩을 생산하게 되기 때문에 엔비디아, 인텔, AMD 등의 파이를 잠식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입니다.

또 하나는 ARM의 구조적인 문제인 ‘박리다매’식 비즈니스를 바꿔 매출·이익 규모를 끌어올리기 위한 오랜 계획이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ARM의 경우 시장 점유율에 비해 매출·이익 규모가 비교적 낮은 편입니다. 이는 설계 라이선스만 제공하고 칩의 직접적인 설계, 최적화, 제조 등에는 관여하지 않아왔기 때문입니다. 실제 최근에는 ARM이 설계 라이선스 비용을 크게 인상한다는 설이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한편 업계에선 최근 이뤄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샘 올트먼 오픈AI CEO, 손 회장의 ‘3자 회동’ 이후 세 회사의 협력 관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일부 투자하는 조건으로, 오픈AI와 ARM에서 삼성의 기술력을 도입하는 방안이 거론된다”며 “ARM의 설계자산을 바탕으로 오픈AI가 AI 가속기를 개발하고, 삼성전자가 생산을 맡는 시나리오”라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