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서초사옥. /뉴스1

삼성전자가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발(發) 영향에 대해 메모리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 기회와 위기가 공존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엔비디아와 AMD 등 인공지능(AI) 가속기 공급업체들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메모리 기업의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사들이고 있다. 이 가운데 딥시크가 내놓은 AI 모델은 저가 HBM으로도 높은 성능을 구현해 단기적으로 국내 반도체 기업엔 위기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 딥시크, 최첨단 HBM보다 2세대 이상 뒤처진 제품 활용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31일 2024년 4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현재 제한적인 정보로 (딥시크의 영향을)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시장 내 단기적 위험 요인과 장기적 기회 요인이 공존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여러 고객에게 GPU(그래픽처리장치)에 들어가는 HBM을 공급하고 있는 만큼 다양한 시나리오를 두고 업계 동향을 살피고 있다”고 했다.

딥시크가 최근 선보인 추론 AI 모델 ‘딥시크 R1′은 미국의 대중 제재 탓에 엔비디아의 최첨단 AI 가속기 H100 대신 성능을 다운그레이드한 H800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챗GPT 개발사 오픈AI가 지난해 9월 출시한 추론 AI 모델 ‘o1′보다 일부 성능 테스트에서 앞서며 글로벌 IT 업계에 충격을 안겨줬다.

엔비디아의 GPU를 활용한 오픈AI가 최신 챗GPT 개발에 투자한 비용은 1억달러(약 1455억원)에 달하는 반면, 딥시크가 R1 개발에 투입한 비용은 이의 20분의 1 수준인 557만6000달러(약 81억원)에 불과하다. 딥시크가 활용한 H800 등 상대적으로 저렴한 GPU에는 최첨단 HBM보다 2세대 이상 뒤처진 3세대(HBM2E) 또는 4세대(HBM3) 제품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단기적 위험 요인과 함께 장기적 기회 요인을 언급한 김 부사장은 “신기술 도입에 따른 업계 다이나믹스(역학관계)는 항상 존재한다고 보고 AI 시장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당장 최첨단 HBM 제품 판매에는 부정적인 영향이 크지만, 딥시크처럼 저가형 반도체로 AI 모델을 개발하는 기업들이 많아지면 장기적으로 시장 전체 HBM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픽=정서희

◇ AI 반도체 수출 통제까지… “HBM 수요, 1분기 줄어든다”

올해에도 IT 수요가 쉽사리 회복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돼 HBM 등 고부가가치 제품의 공급 확대가 삼성전자 사업의 실적을 좌우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주력인 반도체 부문에서 이미 수차례 하향된 전망치보다도 낮은 2조9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 4분기 영업이익(8조828억원)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성적을 낸 것이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올 1분기 HBM 판매가 전 분기 대비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 부사장은 “HBM은 (미국의) AI용 반도체 수출 통제와 같은 지정학적 이슈로 수요 불확실성이 예상보다 더 증가하고 있고, 개선 제품 도입에 따른 수요 이연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HBM 매출 비중이 감소하는 데다 모바일, PC 고객사의 재고 조정도 이어져 1분기에도 실적 부진의 터널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다.

다만 2분기부터는 메모리 수요가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할 것으로 삼성전자는 내다봤다. 김 부사장은 “올해 업계 전반에서 AI 투자가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고 고객사의 재고 조정 속도도 시장의 예상보다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낸드플래시의 경우 업계 전반적으로 감산이 확대돼 늦어도 올 하반기 초부터는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낼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대응하는 전략으로 삼성전자는 ‘선단 공정 전환 가속화’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전환하는 것만이 길이라는 판단에서다. 선단 공정 기반인 HBM을 비롯해 DDR5, LPDDR5x, GDDR7 등의 제품 생산 비중을 늘리고, 낸드 역시 280~290단을 쌓아올린 1Tb(테라바이트) TLC 9세대로의 전환을 가속화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