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대중(對中) 반도체 규제가 심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중국 기업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중국 정부의 대규모 지원에 힘입어 인공지능(AI)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투자해 온 AI 분야의 기술 개발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서 모두 진전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30일 중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최근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는 ‘국가 직접회로 산업 투자 펀드(빅 펀드)’ 3기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나섰다. 자본금 규모는 3340억위안(약 66조원)으로, 종전 1·2기를 합친 금액보다 많다.
앞선 투자가 반도체 제조 및 장비, 부품 투자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3기부터는 컴퓨팅 칩과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에 자금이 집중 투입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국 당국이 빅 펀드를 앞세워 트럼프 행정부가 내놓을 새로운 규제에 대비해 중국 내 공급망을 강화하고 있다고 중국 언론은 전했다. 그 일환으로 중국 당국은 지난 17일 빅 펀드 자산 일부를 할당해 AI 특화 펀드를 따로 조성했다. 약 600억위안(약 12조원) 규모로, AI 스타트업을 비롯한 기술 기업 전반에 자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빅 펀드의 대표적인 수혜 기업인 화웨이는 자체 개발한 AI 칩 점유율을 늘리는 데 여념이 없다. 중국 정부가 현지 대기업들에 하달한 ‘자국 칩 사용 권고’에 힘입어 자체 AI 칩 ‘어센드’를 AI 추론 용도로 구매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추론 작업은 이미 훈련된 AI 모델을 기반으로 실제 데이터를 처리하고 결과를 생성하는 과정으로, 상대적으로 성능이 낮은 하드웨어로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시장 점유율을 늘리기 위해 화웨이는 엔비디아 칩으로 훈련된 AI 모델을 어센드 칩에서도 실행할 수 있도록 호환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있다.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세미애널리시스의 딜런 파텔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중국에서 화웨이의 AI 칩 ‘어센드 910B’가 50만개가량, 엔비디아의 중국 시장용 GPU(그래픽처리장치) ‘H20′가 100만개가량 판매됐는데 최근 들어 이 격차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중국 인터넷 기업 바이두와 칩 설계 전문 기업 캠브리콘 또한 AI 칩 개발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다고 세미애널리시스는 분석했다.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에서도 중국의 AI 굴기는 현재진행형이다. 틱톡 모회사인 바이트댄스는 올해 AI 지출을 대폭 늘리고 나섰다. 지난 23일 로이터통신은 바이트댄스가 올해 200억달러(약 29조원)를 자본 지출에 배정했으며, 이 중 절반가량을 AI 데이터센터와 네트워크 장비를 마련하는 데 사용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화웨이 제품을 비롯해 올해에도 대량의 엔비디아 AI 칩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까지 바이트댄스는 엔비디아 ‘H20′ AI 칩의 최대 구매자다.
업계는 바이트댄스가 한동안 중국 내 AI 선두 지위를 유지하면서 해외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바이트댄스는 AI 챗봇 두바오(豆包)를 비롯해 15개 이상의 독립형 AI 애플리케이션(앱)을 보유하고 있다. AI 제품 사용 순위를 집계하는 Aicpb닷컴에 따르면 작년 5월 출시된 두바오의 지난달 월간 활성 사용자수는 7116만명을 기록했다. 오픈AI의 챗GPT 사용자수(3억1529만명)에는 못 미치지만 AI 앱 기준 세계 2위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