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이 연구개발 중인 반도체 유리기판. /인텔 제공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면서 성능을 대폭 개선할 수 있는 유리 기판 개발에도 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 2025’에서 한층 진보된 유리 기판 기술이 공개됐고, 대형 기업들 간의 거래가 성사되면서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유리 기판 시대가 더 빨리 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16일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유리 기판 시장 규모는 2023년 71억달러에서 2028년 84억달러로 18%가량 성장할 전망입니다. AI 시대 대용량 빅데이터의 효율적 처리를 위해서는 고성능 메모리를 비롯해 GPU(그래픽처리장치)·CPU(중앙처리장치) 등 반도체 패키지가 필요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 “발열 리스크 해소, 소형화·미세공정 고도화”

유리 기판은 반도체 기판에 기존 플라스틱과 같은 유기 소재 대신 유리를 사용하는 기술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칩의 패키징 두께를 최대 4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이는 실질적으로 반도체 미세공정을 한 세대에서 두 세대 정도 앞당기는 효과입니다. 가령 7나노(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칩으로 3나노를 구현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입니다.

유리 기판을 사용하면 칩의 온도 상승에 따른 패턴 왜곡 현상이 크게 줄어듭니다. 발열에 훨씬 강하다는 얘기입니다. 발열은 반도체의 가장 큰 적입니다. 여기에 극도로 미세한 리소그래피 공정의 깊이를 향상하기 위한 평판도가 개선되고, 초대형 폼팩터 패키징 역시 가능해지면서 수율이 높아집니다. 이러한 독특한 특성으로 인해 유리 기판에서 인터커넥트 밀도를 10배 높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습니다.

유리 기판은 반도체 시장의 미래 기술로 여겨지는 칩렛(Chiplet) 패키징 적용에도 가장 적합한 기술로 꼽힙니다. 칩렛은 하나의 칩에 서로 다른 종류, 다양한 기능의 칩을 레고처럼 자유롭게 붙이는 기술로, 에너지 효율이 높을 뿐 아니라 고성능 칩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유리 기판이 상용화될 경우 칩 설계자들은 단일 패키지 내에서 더 작은 공간에 더 많은 타일(혹은 칩렛)을 탑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뛰어난 유연성과 낮은 전력 사용으로 향상된 성능 및 집적도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 인텔 이어 삼성·LG·SK도 참전… 상용화 빨라져

유리 기판 기술 개발에 가장 먼저 뛰어든 반도체 기업은 인텔입니다. 지난 2023년 라훌 마네팔리 인텔 펠로우는 “오는 2030년 기존 유기 소재의 기판을 사용한 반도체는 트랜지스터를 확장하는 데 한계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 유기 재료는 전력효율성 및 수축과 뒤틀림 같은 한계를 지닌다”며 “반도체 산업의 발전과 진화에 있어 확장성은 결정적이며, 유리 기판은 차세대 반도체를 구현하기 위해 실행 가능한 필수적인 단계”라고 언급했습니다.

마네팔리 펠로우는 “인텔의 유리 기판 연구개발(R&D)이 10년 전부터 본격화 됐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미 2010년대부터 준비해 온 기술이라는 얘기입니다. 인텔은 미국 애리조나 공장에 10억달러 규모를 투자해 유리 R&D 라인을 설립했으며, 주요 파트너사들과 긴밀한 협력 생태계를 만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인텔은 건축, 공정, 장비 등 유리 기판과 관련한 600여개의 발명품을 고안해내기도 했습니다.

국내 기업들도 경쟁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SKC는 CES 2025에서 유리 기판을 선보였습니다. 해당 기판은 기존 기판 대비 데이터 처리 속도가 40% 빨라지고 전력 소비와 패키지 두께는 절반 이상으로 줄어든 제품입니다. AI 데이터센터에 유리 기판을 적용하면 센터의 면적과 전력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8일 SK 전시관을 둘러보던 중 SKC가 만든 유리 기판을 들어보이며 “방금 팔고 왔습니다”라고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전문가들은 SKC의 유리 기판이 상용화 수준에 도달했으며, 엔비디아 등 주요 기업에 납품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삼성전기와 LG이노텍도 유리 기판 사업에 속도를 내는 중입니다. 문혁수 LG이노텍 대표는 지난 8일 CES 2025에서 유리 기판에 대해 “무조건 가야 하는 방향이고, LG이노텍도 장비 투자를 해서 올해 말부터 시제품 양산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유리 기판이 2~3년 후 통신용 반도체에 쓰이기 시작할 것이고 서버용도 5년 후 주력으로 쓰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삼성전기도 세종사업장에 파일럿 라인을 구축한 데 이어 올해 고객사 대상 샘플 프로모션을 진행 중입니다. 양산 시점은 2027년 이후가 될 것으로 관측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