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CES 2025' 기조연설에서 최신 인공지능(AI) 가속기 '블랙웰(Blackwell)'을 탑재한 지포스 RTX 50 시리즈 그래픽 카드를 공개하고 있다./뉴스1

지난해 내내 설계 결함과 과열 등의 문제로 출시가 지연됐던 엔비디아의 차세대 인공지능(AI) 가속기 ‘블랙웰’이 출시 후에도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AWS), 구글 등 주요 고객사들은 블랙웰 주문을 연기하거나 이전 세대 AI 칩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의 최대 수익처로 꼽히는 블랙웰 납품 문제가 장기화할 경우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삼성전자 등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범용 D램, 낸드플래시,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시장 전망이 어두운 가운데 이익률이 가장 높은 최첨단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량이 기대치에 못 미친다면 직격타가 불가피하다.

13일(현지시각) IT 매체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MS와 AWS, 구글, 메타 플랫폼 등은 엔비디아의 ‘블랙웰 GB200′ 랙 주문 일부를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웰 칩이 장착된 랙의 첫 번째 출하분에 과열이 발생하고 칩 간 연결 방식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일부 주문이 연기되고 취소됐다는 설명이다. 데이터센터에 사용되는 랙은 칩, 케이블 및 기타 필수 장비를 안전하게 담고 서로 연결하는 필수 장치다.

엔비디아의 블랙웰은 지난해 내내 설계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지난해 3월 블랙웰을 처음 공개한 엔비디아는 해당 제품을 2024년 2분기 내 출시할 수 있다고 발표했지만, 생산 과정에서 결함이 발견되면서 한 차례 미룬 바 있다. 그리고 지난 8월 실적발표에서 지난해 4분기에 양산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또다시 설계 문제가 도마에 오르며 공급이 지연됐다.

이는 올해 대규모 AI 서버 투자를 단행할 계획인 미국 주요 빅테크의 투자 계획에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메타와 구글은 그레이스 블랙웰 GB200을 100억달러(약 13조9600억원) 이상 구매했고, MS는 자사뿐 아니라 오픈AI가 쓸 물량을 최대 6만5000개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웰은 기존 차세대 AI 칩 ‘H100′ 대비 성능이 30% 향상됐으며, 에너지 소비가 최대 25분의 1수준으로 줄어 대형 IT 기업들의 기대를 받아왔다. 블랙웰 연구개발(R&D)을 위해 엔비디아는 100억달러(14조원) 이상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가격은 개당 3만~4만달러로 책정됐다.

하지만 반도체 성능의 가장 큰 리스크인 발열 문제가 출시 이후 끊이지 않으면서 IT업계에선 신뢰성에 대한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실제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파트너사인 MS의 경우 애리조나 피닉스에 5만개 이상의 블랙웰 칩이 장착된 GB200 랙을 설치할 계획이었으나, 블랙웰에 잇단 결함이 발생하자 오픈AI가 MS에 이전 세대의 엔비디아 ‘호퍼’ 칩을 제공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대형 메모리업체 관계자는 “블랙웰 GB200의 발열 문제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고, 국내 최대 HBM 공급업체인 SK하이닉스에 지속적으로 전력효율 개선을 요청해왔다”며 “AI 데이터센터 전력의 상당 부분은 메모리에서 발생하는데 HBM은 기존 서버와 달리 2.5D 구조로 탑재되기 때문에 프로세서와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해 발열 문제가 더 치명적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올해 성적이 HBM에 달려있는 국내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은 불안한 시선으로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최신 GB200 NVL72 플랫폼에 최신형 HBM이 576개나 탑재될 정도로 많은 물량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블랙웰 결함 문제가 장기화할 경우 주력 공급사인 SK하이닉스의 실적에 직격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엔비디아 블랙웰 G200 1차 납품분에서 많은 이슈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발열 문제로 아예 작동하지 않는 제품이 있을 정도로 문제가 있다”며 “다만 아직 1차 물량이기 때문에 추후 문제를 수정해 대량 납품을 재개할 가능성도 있지만, 계획보다 매출 발생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