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첨단 공정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극자외선(EUV) 장비를 확보하기 위한 업체 간 쟁탈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인텔이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에서 업계 1위 대만 TSMC와 삼성전자를 따라잡겠다고 선언하면서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른 차세대 EUV 장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8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인텔은 전날 기술 설명회에서 네덜란드 ASML의 차세대 제품인 하이(high) NA 극자외선(EUV) 장비를 공급받는다고 공식 선언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ASML과의 협력을 강화해 차세대 EUV 제품인 하이 NA EUV를 업계 최초로 공급받을 예정이다”라고 했다.
EUV 장비는 네덜란드 ASML이 독점 생산, 판매하는데 10㎚(나노미터, 1㎚=10억분의 1m) 이하 공정에는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인텔이 거론한 하이 NA EUV는 ASML이 개발 중인 차세대 EUV 장비로, 3㎚ 이하 최첨단 공정에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이 NA EUV는 반도체 노광 공정에 사용되는 렌즈(또는 거울)의 해상도를 기존 EUV 장비에서 더 개선한 장비를 말한다. 반도체 노광 공정에서 렌즈는 빛을 전달해 반도체 회로를 반복적으로 찍어내는데, 렌즈의 해상도가 높으면 빛이 더욱 선명해지면서 초미세화를 구현하는 데 유리하다.
EUV 장비에는 최소 10개 이상의 렌즈가 탑재되는데, 하이 NA EUV의 빛 반사율은 기존 EUV와 비교해 60% 이상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렌즈의 해상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렌즈의 크기를 키워야 해 전체 설비의 크기와 가격이 비싸진다는 단점이 있다. ASML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렌즈의 가로축만 인공적으로 늘려 해상도를 보완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ASML은 해상도를 보완하는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2016년 지분 24.9%를 인수한 독일 자이스 반도체 사업부문의 기술력을 활용하고 있다. ASML은 하이 NA EUV를 2023년 말까지 개발을 완료해 1년간의 테스트 과정을 거쳐 2025년 본격적으로 양산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ASML은 차세대 EUV 장비 개발에 앞서 기존 EUV 장비 생산량도 빠르게 늘려가기로 했다.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진행된 2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지난해 31대의 EUV 장비를 생산했는데, 올해 40여대로 늘리고, 2023년 60대 이상으로 생산량을 확대하겠다”라며 “EUV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겠다”라고 했다.
인텔이 EUV 장비 확보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그동안 EUV를 독점해 온 TSMC와 삼성전자는 긴장하고 있다. EUV 장비 확보에 차질이 생길 경우 반도체 생산 일정 자체에 차질이 발생, 첨단 공정 경쟁에서 밀리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TSMC와 삼성전자도 2025년 ASML의 하이 NA EUV를 도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인텔의 등장으로 하이 NA EUV의 도입 수량은 줄어들 수 있지만, 시기에서는 인텔과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으로 평가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TSMC와 삼성전자는 ASML의 가장 큰 고객사로, 하이 NA EUV 도입 시기는 인텔과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며 “인텔이 업계 최초로 하이 NA EUV를 도입한다는 건 선언이자 희망사항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