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의 의료용(산업용) 대마 규제자유특구 내 스마트팜에서 의료용 대마가 자라고 있다. /경북산업용대마 규제자유특구 제공

여섯 살 최 모군은 네 살 때 뇌전증(간질이라고 불렸던 병)이 생겼다. 발작 증세를 줄이는 뇌전증 치료제를 네 가지나 복용해도 하루에도 7~8번씩 증세가 나타났다. 발작을 줄인다는 케톤식(食)도 시도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지능도 또래 아이의 40%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최 군의 경련이 기적처럼 사라졌다. 대마에서 추출한 카나비디올(CBD) 오일로 만든 약을 복용하고 나서부터다. 대마에서 유래한 약물 카나비디올은 2018년 국내에 도입됐다. 최 군은 항경련제 네 종도 모두 끊었다. 지능도 같은 연령대 80% 수준까지 올라왔다. 최 군 부모들은 대마 카나비디올 오일이 인생 최고의 기적이라고 말한다.

1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의료용 대마 사업 규제 완화 소식에 대마 성분 치료제 관련 특허가 있는 기업에 협업을 요청하거나, 의료용 대마 성분 추출 기술을 가진 회사에 억 단위 투자금이 들어오는 등 제약 바이오 업계에 다양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당장 지난달 11일 국내 중소 제약사인 화일약품(061250), 우리바이오(082850) 주가가 10% 넘게 급등했다. 2600원이던 화일약품 주가는 이날 장중 3050원까지 치솟았고, 우리바이오 주가도 8월 10일 3749원에서 12일 4820원까지 치솟았다.

올 들어 국내 제약·바이오주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중소 제약사의 주가가 급등하자 투자자들은 어리둥절했다. 두 회사 주가가 급등한 것은 정부가 의료용 대마 제조·수입 규제를 풀겠다고 발표한 데 따른 것으로 파악됐다.

이날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기업이 의료 목적으로 대마를 재배·가공해 약을 만들어 팔 수 있도록 2024년까지 법을 개정한다고 발표했는데, 두 회사 모두 의료용 대마 연구·재배 등과 관련된 회사이기 때문이다.

화일약품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에 쓰는 카나비디올 성분에 대한 특허를 보유한 카나비스메디칼의 지분 49.15%를 갖고 있다. 우리바이오는 경기 안산에서 의료용 대마 성분 추출 기술을 개발 중이다. 기술 개발이 끝나면 제품화를 위해 국내 제약사와 협업하거나 기술 이전을 추진할 계획이다.

현재 국내에서 쓸 수 있는 대마 성분 의약품은 ▲에피디올렉스(뇌전증) ▲사티벡스(다발성경화증) ▲마리놀(에이즈 후유증) ▲세사메트(항암치료 후유증) 등 4가지다. 약 처방이 필요한 환자가 생기면 식약처 산하기관인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가 해외 제조사에서 직수입해 공급한다. 국내 기업이 해당 치료제를 제조·수입하는 건 불법이다. 정부는 이런 규제를 대부분 풀고, 해외 제약·바이오 기업에서 수입한 대마 성분 의약품을 국내 환자에게 파는 것도 허용하기로 했다.

정부 규제 완화 움직임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HLB생명과학이다. HLB생명과학에 따르면 회사는 의료용 대마 성분 ‘칸다비디올(CBD)’ 추출·가공 전문 기업인 네오켄바이오에 18억원 가까운 돈을 투자하기로 했다. 18억원 중 10억원은 HLB생명과학, 나머지는 계열사인 HLB인베스트먼트 등에서 부담한다.

HLB생명과학은 네오켄바이오가 공급한 의료용 대마 원료를 활용해 뇌전증 치료제, 항암제 등을 개발할 계획이다. 또 대마 성분으로 만든 화장품, 건강기능식품(건기식) 시장에도 진출하기 위해 관련 기술을 가진 기업을 탐색하고 있다.

이미 의약품을 개발 중인 회사도 있다. 아이큐어는 현재 수입한 대마 성분 원료 의약품을 연구하며 먹거나 몸에 붙이는 형태의 진통소염제를 만들고 있다. 이 회사는 대마 성분 의약품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지난해 식약처로부터 ‘마약류취급학술연구자’ 승인을 받았다.

산업계 움직임에 맞춰 농림축산식품부는 산업용 대마 재배·가공·유통 시 따를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해 원광대 산학협력단과 연구 과제를 진행 중이다. 오는 12월쯤 연구를 마무리하면 그 내용을 바탕으로 식약처가 법 제정을 추진한다.

KIST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 연구원들이 스마트팜에서 의료용 대마를 키우고 있다. 약용 물질을 많이 생산하는 신품종도 개발 중이다. /KIST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