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 관세 발표에 월가가 뒤늦게 충격에 빠졌다. 감세와 규제 완화를 기대하며 그를 지지했던 금융권은 예측 불가능한 보호무역 강화에 당황했고, “우리가 트럼프를 잘못 이해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S&P500 지수는 이틀 만에 5조달러가 증발했고, 국채 수익률도 급등하면서 시장 전반에 불안이 퍼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5일(현지 시각) 트럼프 재선을 계기로 그를 다시 지지했던 월가가 관세 충격을 직면한 뒤 “우리가 트럼프를 잘못 판단했다”며 뒤늦은 후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요 자산운용사와 투자은행, 로펌까지 줄줄이 손실을 입었고, 충격파는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FT에 따르면 지난 2월 플로리다에서 열린 사우디 국부펀드 주최 콘퍼런스에서는 월가 거물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듣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기도 했다. 당시 시장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었고, 트럼프의 관세 정책도 일종의 성장 전략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불과 두 달 만에 상황은 급변했다. 이달 초 발표된 관세 조치가 금융시장을 뒤흔들며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우려를 동시에 키웠기 때문이다.
특히 월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첫 임기 때 보여준 감세와 규제 완화 기조를 이번에도 이어갈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자국 보호주의와 반(反)세계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관세 부과 기준도 불투명한 데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 이탈까지 겹치면서 일부 대형 연기금과 사모펀드는 수익률 악화와 투자 손실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FT는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기조는 월가보다 중산층 유권자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이러한 포퓰리즘이 미국 금융시장 내 불확실성을 구조적으로 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관세 발표 직후 블랙록, JP모건, 아폴로 등 대형 금융기관의 주가는 일제히 하락했고, 인수·합병(M&A) 건수는 1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을 믿어달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은 차가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월가 내부에서는 “트럼프는 애초에 월가의 대통령이 아니었다”는 회의론과 함께 “그를 너무 안이하게 봤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일부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냈지만 대다수 금융권 인사들은 정권의 보복을 우려해 침묵을 선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JP모건의 시장 및 투자 전략 부문 의장인 마이클 셈발레스트는 “시장에 대한 전망뿐 아니라 내 발언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고민하게 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결정 구조가 투자자 불안감을 자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금융권과의 소통 창구를 사실상 닫고 독단적인 결정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시장은 ‘예측 가능한 대통령’이라는 기존 가정을 점점 더 신뢰하지 않게 되고 있다는 반응이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9일 새벽 상호 관세 부과를 90일간 유예하겠다고 발표하며 한발 물러섰지만, 이는 금융시장 혼란을 일시적으로 진정시키기 위한 임시 조치에 불과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채권시장 불안, 달러 약세, 금리 급등 등 복합적인 위험 신호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시장은 새로운 ‘트럼프 리스크’에 긴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