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자수는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나 시애틀의 스페이스 니들처럼 로스앤젤레스(LA) 지역의 상징이다. 우뚝 솟은 줄기와 두꺼운 잎을 지닌 야자수는 오랫동안 LA의 스카이라인을 지배해왔다. 그러나 최근 LA에서는 도심에 길게 늘어선 야자수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11일(현지 시각) 캘리포니아 알타데나에서 이튼 화재로 파괴된 집들 사이로 보이는 야자수의 모습 / AFP=연합뉴스

30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WP)는 “상당수의 야자수가 올해 초 남부 캘리포니아를 휩쓴 산불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줬고, 이로 인해 16만 6000채 이상의 건물이 불에 타고 최소 29명이 사망했다”며 “일부는 이 상징적인 나무가 그늘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큰 화재 위험을 초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실 야자수는 LA의 토착 식물이 아니다. 18세기 스페인 선교사들이 대추야자를 가지고 LA 지역에 들어왔고, 이후 서부로 이주한 사람들이 또 다른 야자수 종인 캘리포니아 팬 야자수를 심으면서 확산됐다. 대공황 시절, LA는 1932년 올림픽을 앞두고 일자리 창출과 미관 개선을 위한 차원에서 수천 그루의 야자수를 심었다. 이후 야자수는 LA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야자수 비판자들은 높게 뻗은 줄기가 화재 발생 시 불꽃이 공중으로 치솟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캘리포니아 원주 식물 협회의 보존 프로그램 책임자인 닉 젠슨은 “나무가 자라면서 초록 잎 아래에 쌓이는 갈색 마른 잎이 불을 확산시킨다”며 “야자수가 불씨를 머금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야자수는 ‘불쏘시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화재 진압을 어렵게 만든다. NYT는 “키가 큰 야자수에 불이 붙으면 소방관들이 끄기 어렵다”며 “야자수의 높고 불타는 잎사귀가 불씨를 멀리까지 퍼뜨려 더 많은 화재를 일으키고 화재 진압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전했다. 조경 건축가인 에스더 마굴리즈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는 “공무원들이 화재에 취약한 지역에서 야자수를 베어야 한다”고 했다.

폭염 속에서 야자수가 거의 그늘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점도 야자수 제거 주장의 근거가 된다. 가로수로 많이 쓰이는 활참나무는 70피트(21m) 미만으로 자라며, 일반적으로 이 높이의 두 배에 달하는 그늘을 만들어준다. 반면, LA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자수 종류인 ‘멕시칸 팬 팜’은 높이가 100피트(약 30m)에 달하지만, 그늘 폭은 10∼18피트(3∼5m) 정도에 불과하다.

가로수의 주요 목적 중 하나가 보행자에게 햇빛으로부터 쉼터를 제공하는 점에서, 야자수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 점은 폭염 발생 빈도가 잦 LA에서 치명적인 단점이다. 이에 2019년, 에릭 마이클 가세티 당시 LA 시장은 대부분 야자수가 아닌 나무 종들로 9만 그루를 심는 캠페인을 시작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민간 주택 개발업체들도 야자수 심기를 꺼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A의 나무 심기 단체 중 하나인 트리피플(TreePeople)의 수석 수목 전문가 브라이언 베하르는 “LA에서 야자수를 완전히 없애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나무가 주는 기능적 가치를 고려할 때, 야자수를 대량으로 심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