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운동 당시 ‘정치 보복’을 예고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을 수사했던 검사가 변호사로 재직했거나, 민주당 친화적인 행보를 보인 법률회사(로펌)를 겨냥해 연방 정부와의 계약을 중단시키는 행정명령을 잇달아 발표하며 이른바 ‘로펌 길들이기’에 나섰다. 이에 경쟁 로펌이 트럼프의 표적이 된 로펌의 유능 변호사 영입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곳은 뉴욕 로펌인 ‘폴 와이스(Paul Weiss)’다.

26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는 유명 로펌인 설리번앤크롬웰(Sullivan & Cromwell), 커클랜드앤엘리스(Kirkland & Ellis), 립톤(Lipton), 로젠앤카츠(Rosen & Katz) 소속 다수의 변호사를 인용해 “트럼프가 폴 바이스에 행정명령을 내린 14일 이후 위기에 처한 폴 와이스의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수익성이 있는 고객과 함께 이직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고 전했다.

미국 뉴욕 폴 와이스 사무실 안에 있는 이들이 25일(현지 시각) 폴 와이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린 행정명령에 대해 소송을 하지 않고 합의한 것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앞서 트럼프는 14일, 폴 와이스 소속 변호사들의 연방정부 보안 인가를 박탈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또한 폴 바이스와 연방 정부의 계약을 해지하는 조치를 하라고 명령했다. 트럼프가 대형 로펌을 상대로 내놓은 세 번째 행정명령으로 트럼프는 당시 로펌이 “사법 절차를 훼손하고 미국의 원칙을 파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폴 바이스가 2021년 1월 6일 미 의회를 습격한 개인을 상대로 워싱턴DC 법무 장관실이 제기한 소송을 무료로 변론한 일을 인용했다. 폴 와이스에는 맨해튼 지방검찰청에서 트럼프의 ‘성 추문 입막음’ 사건을 수사한 마크 포머런츠 전 검사가 일한다. 또한 지난해 대선에서 민주당을 위한 모금 행사도 열였다. 이 외에도 트럼프 1기 당시 미국 남부 국경에서 헤어진 가족들에게 법적 지원을 제공한 로펌 중 하나다.

다만 트럼프는 폴 와이스에 내린 행정명령을 20일에 철회했다. 폴 바이스가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대해 법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대신 트럼프 보좌진과 만나 협상을 벌인 결과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1일 “민주당 지지자인 브래드 카프 회장은 트럼프 보좌진과 협상하기 위해 19일 백악관을 찾았다”며 “백악관은 결국 행정명령을 철회했고, 그 대가로 폴 와이스는 재향군인 지원, 반유대주의 퇴치 등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4000만 달러(약 586억4800만 원) 규모의 무료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백악관은 20일 카프 회장이 “미국 사법 제도를 회복해야 할 필요성을 인정했다”고 발표했고, 카프 회장은 “우리는 트럼프, 트럼프 행정부와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관계를 기대한다”고 했다.

폴 와이스의 행보는 트럼프로부터 비슷한 행정명령을 받았던 법률회사 ‘퍼킨스 코이’와 상반된다. 퍼킨스 코이는 법적으로 행정명령의 위헌성 여부를 다루기로 했다. 퍼킨스 코이는 소송을 제기한 지 며칠 만에 주요 고객 여럿을 잃었다. 이것이 폴 와이스가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대신 협상을 한 이유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WSJ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적대 관계였던 폴 와이스가 (트럼프에) 항복한 것은 로펌 업계 전체가 트럼프의 위협으로 인해 재정적으로 파멸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NYT는 4명의 폴 와이스 관계자를 인용해 “일부 파트너 변호사는 실무 책임자인 스콧 바샤이가 떠나고, 다른 변호사들이 그를 따를 것을 우려했다”며 “폴 와이스가 법정에서 트럼프를 상대로 성공을 거두더라도 ‘트럼프의 적’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을 우려했다”고 전했다.

NYT에 따르면 카프 회장은 지난 23일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경쟁사들이 우리 고객을 공격적으로 유치하고 변호사를 모집하면서 우리의 취약점을 악용하려 한다”고 했다. NYT는 “대형 로펌은 인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한다’며 “정기적으로 최고 변호사를 영입해 업무를 강화하고 더 많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는 고객을 유치한다”고 했다.

한편, 폴 와이스는 골드만삭스, 시티그룹, 블랙스톤,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 등과 같은 대형 금융회사를 고객으로 뒀다. 전 세계 직원은 2000명 이상으로 지난해 26억 달러(약 3조8121억2000만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