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연합(EU)에서 수입되는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를 예고한 가운데, 프랑스 명품 그룹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회장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해 관세 리스크를 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19년 열린 텍사스주(州) 루이뷔통 공장 개소식에서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회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

19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워싱턴의 로비스트들을 동원해 유럽 명품 산업이 무역 분쟁의 원인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관세 부과 대상에서 자사 제품을 제외하려 하고 있다. WSJ은 “아르노 회장은 32세의 아들 알렉산드를 LVMH의 핵심 직책에 배치해 트럼프 및 그 가족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아르노 회장이 관세 문제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미국 시장이 LVMH의 핵심 매출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LVMH의 미국 매출 비중은 그룹 전체의 27%에 달한다. 특히 중국 매출이 지난해 약 20% 급감하면서 미국은 더욱 중요한 성장 엔진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관세가 부과될 경우, 명품 가격이 상승해 소비 위축과 실적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조만간 EU산 수입 제품에도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며, 미국이 유럽으로부터 자동차, 식품, 농산물을 대규모로 수입하는 반면 EU는 미국산 자동차와 농산물을 충분히 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달 31일에도 EU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사실 아르노 회장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를 활용해 관세를 피한 전례는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였던 지난 2019년 유럽 항공기·치즈·와인 등에 75억 달러 규모의 관세가 부과됐을 때 명품 가방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WSJ에 따르면 해당 결정이 발표되기 하루 전, 아르노 회장은 텍사스주에 설립한 루이뷔통 공장 개소식에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샴페인과 가죽 제품이 관세 대상에서 빠진 이유를 묻는 말에 “아르노가 미국으로 왔기 때문”이라며 “프랑스 최고의 사업가가 미국에 투자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아르노 회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인연은 지난 1980년대 뉴욕에서 시작됐다. 당시 두 사람은 부동산 개발자로 활동하며 관계를 맺었다. 이후 LVMH가 뉴욕 중심가에 루이뷔통 매장을 열 때 트럼프 그룹과 임대 계약을 체결했고, 이 관계는 계속 유지됐다. 또한 아르노 회장의 둘째 아들 알렉산드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친구 사이이며, 이방카 트럼프는 아르노 회장의 딸 델핀과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아르노 회장은 지난달 28일 실적 발표회에서 “미국 내 생산을 확대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LVMH는 미국 전역에서 14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명품 산업 특성상 생산 라인의 미국 이전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샴페인과 코냑 같은 주류 제품은 프랑스 특정 지역에서만 생산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명품 제품 역시 고유한 제조 기술을 유지하기 위해 유럽 내에서 제작되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아르노 회장의 인맥이 이번에도 관세로부터 그룹을 지켜낼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