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기술 기업들이 기업공개(IPO) 계획을 연기하거나 철회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IPO 붐을 기대했던 투자자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시장 변동성과 정책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은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자동차계의 에어비앤비로 불리는 자동차 공유 플랫폼 투로(Turo)는 13일(현지 시각)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서류를 통해 IPO 철회 결정을 공식 발표했다. 안드레 하다드 투로 최고경영자(CEO)는 성명을 통해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라며 상장 철회 이유를 밝혔다. 투로는 2021년부터 상장을 추진해 왔으나, 시장 환경을 고려해 결정을 번복한 것으로 해석된다.
투로뿐만 아니라, 다른 기술 기업들 역시 IPO 추진을 망설이고 있다. 지난해 가을 투자 설명서를 제출했던 인공지능(AI) 칩 기업 세레브라스 역시 상장 계획을 연기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올해 IPO 시장의 모멘텀은 지난해보다 강하지만, 기대했던 대규모 상장 붐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IPO 전문 투자펀드 운용사 르네상스 캐피털에 따르면 올해 기업들이 상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은 총 66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4% 증가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상장을 대기해 온 대형 기업들의 움직임은 여전히 둔한 상태다.
◇시장 불확실성 확대에 얼어붙은 시장
기업들이 상장을 미루는 큰 이유 중 하나는 극심한 변동성과 불확실성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발표와 급격한 규제 변화는 투자 심리를 위축시켰다. NYT는 “당초 트럼프 당선은 불확실한 선거전을 끝내며 친기업적이고 반(反)규제적인 시대의 시작을 알리며 주식 시장은 대규모 거래 증가에 대한 기대감으로 급등했다”면서 “그러나 최근 정부의 관세 정책과 규제 변화가 오히려 불확실성과 변동성을 초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 심화와 글로벌 경제 불안도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등장한 중국의 인공지능(AI) 애플리케이션 ‘딥시크(DeepSeek)’는 미국 기술주에 대한 신뢰를 흔들었다. AI 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줄어들면서 관련 주식들의 주가가 일제히 하락했고, IPO 시장 역시 영향을 받았다. 비상장 주식 거래 플랫폼 ‘에쿼티젠’의 공동 창립자 필 해슬렛은 “꽉 차 있던 IPO 일정이 불과 3주 만에 텅 비어버렸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 금리, 지정학적 리스크 등 거시 경제적 우려가 다른 기업들의 IPO 계획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IPO 필요 없어... 민간 투자 택하는 스타트업들
일부 스타트업들은 IPO 대신 민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골드만삭스 CEO 데이비드 솔로몬은 “최근 스타트업들이 IPO를 미루는 이유 중 하나는 민간 투자 시장에서 충분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과거 같았으면 상장하지 않을 수 없는 기업들도 이제는 민간 시장에서 충분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700억 달러 규모의 평가를 받은 스트라이프가 수십억 달러를 조달하는 데 도움을 줬다. 스트라이프는 상장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기존 주주 및 직원들에게 일정 지분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
IPO 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은 것은 아니다. 지난 15일, 사이버 보안 기업 세일포인트 테크놀로지스는 13억8000만 달러를 조달하며 상장에 성공했다. 그러나 주가는 공모가(23달러) 대비 4% 하락하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하반기부터 IPO 시장이 점진적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변동성이 계속된다면 기업들의 ‘타이밍 저울질’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