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의 작년 4분기 매출이 시장 전망치를 밑도는 약 19억 유로(약 2조9000억원)대를 기록했다. 구찌의 부진으로 모기업 케링 그룹의 실적도 흔들리고 있다. 브랜드의 회복을 이끌 핵심 인물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마저 부재한 상황이서, 구찌의 부진이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프랑스 칸의 구찌 매장 / 로이터=연합뉴스

11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케링 그룹은 구찌의 작년 4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4% 감소한 19억 유로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백화점, 면세점 등을 통한 도매(Wholesale) 매출이 1년 새 53% 감소한 영향이 컸다. 소매 직영점((Directly Operated Retail) 매출은 21% 줄어들었다.

연간 실적도 좋지 못하다. 구찌는 회계연도 2024년에 매출 77억 유로(약 12조6000억원), 영업이익 16억 유로(약 2조4000억원)를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23%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51% 급감했다. 2022년만 해도 100억 유로(약 15조원)를 돌파했던 구찌의 매출은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구찌 부진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FT는 “중국을 비롯한 주요 시장의 악화도 영향을 미쳤지만, 구찌의 브랜드 정체성 상실과 유행에 맞춰 디자인을 변화시키는 데 취약한 점이 케링의 최대 브랜드에 큰 타격을 입혔다”고 평가했다. 구찌는 케링 총 매출의 50%를 차지하는 핵심 브랜드다.

구찌의 부진이 이어지면서 모회사 케링 그룹 역시 큰 타격을 입었다. 지난해 케링은 전년 대비 12% 감소한 172억 유로(약 25조9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6% 감소한 25억5000만 유로(약 3조8000억원)를 나타냈다. 케링의 작년 4분기 매출 역시 전년 동기 대비 12% 감소했다.

투자은행 번스타인의 애널리스트 루카 솔카는 “지난해는 케링에게 ‘끔찍한 한 해’였다”면서 “거의 모든 브랜드에서 영업이익 추이는 예상보다 괜찮았지만, 2023년과 비교해 절대적인 감소폭이 매우 두드러졌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구찌의 회복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케링이 지난주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바토 데 사르노와의 결별을 선언하면서, 구찌 디자인 팀이 수장 없이 다음 쇼를 이끌게 됐기 때문이다. 구찌는 재작년 1월 신진 디자이너 사르노를 영입했지만, 2년 만에 그의 실험은 끝이 났다.

구찌는 지난 2022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렉산드로 미켈레와 결별한 후 부진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2015년 발탁된 미켈레는 구찌의 디자일을 총괄한 지 4년 만에 매출을 40% 이상 늘리는 등 구찌 스타일을 재창조하며 전성기를 이끈 인물로 평가 받는다.

사르노의 후임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앞서 지난 6일 FT는 내부 관계자를 인용해 “케링은 작년 여름부터 (사르노의)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면서 “루이비통모엣헤네시(LVMH) 산하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조너선 앤더슨 등과 접촉했지만, 앤더슨은 구찌의 제안에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구찌의 회복이 더딜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GAM의 펀드 매니저 플라비오 체레다는 “케링이 적절한 구찌의 디자이너를 영입하고, 올바른 메시지를 전달하면 시장의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실질적인 실적 개선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디자이너가) 아주 뛰어나면 세 시즌이 걸리겠지만, 대체로 네 다섯 시즌이 지나야 숫자로 드러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