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현지 시각) 여객기와 군 헬기가 충돌해 폭발한 뒤 포토맥강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한 미국 워싱턴 DC 로널드 레이건 공항은 미국 내에서도 가장 혼잡한 공항으로 꼽힌다. 실제 사고 당시 영상에는 충돌 직전의 여객기와 헬기 외에도 근방에서 비행 중이던 또 다른 항공기 불빛이 포착됐다. 현지 언론들은 “레이건 공항 상공은 미국에서 가장 복잡할 뿐만 아니라 비행하기에도 까다로운 공항”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29일(현지 시각) 레이건 내셔널 공항으로 접근하던 여객기가 군 헬기와 충돌한 후 포토맥강으로 추락한 사고 현장에서 비상 대응팀이 구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강 너머로 보이는 건물은 미 국회의사당이다. / AFP=연합뉴스

레이건 공항이 혼잡한 이유는 공항 인근에 백악관, 국회의사당 등 수많은 민간 및 군사시설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BBC 방송은 “레이건 공항 상공은 국가 안보와 미국 정부의 핵심 기관 건물을 보호하기 위해 엄격히 제한돼 있다”며 “좁은 상공에 많은 항공기가 투입되면서 혼잡이 심하다”고 30일 전했다.

특히 공항 바로 옆에 국방부 청사(펜타곤)가 있어 각종 군용기의 비행도 잦은 편이다. 미 연방항공청(FAA)에 따르면 2017~2019년 레이건 공항 공역에서 약 50개 기관이 총 8만8000여 건의 헬리콥터 비행을 수행했다.이번 사고 당시에도 군 헬기가 비행 훈련을 하고 있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군용 및 해안 경비대 헬리콥터는 종종 낮은 고도로 포토맥강 상공을 비행하며, 이 지역은 레이건 공항을 이용하는 민간 여객기들의 이착륙 경로와 겹친다”고 전했다. 아메리칸에어라인 소속 기장이자 미 연합조종사협회(APA) 대변인인 데니스 테이저는 “레이건 공항 상공은 마치 ‘벌집’ 같은 곳”이라며 “공역이 극도로 좁고, 교통량이 매우 많다”고 WP에 말했다.

CNN 역시 레이건 공항이 조종사들에게 가장 복잡한 접근 경로를 요구하는 공항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전 FAA 안전검사관인 데이비드 소시는 CNN에 “레이건 공항은 군용기와 상업용 항공기가 함께 운항한다”면서 “비행 경로 제한과 특정한 착륙 방식을 요구하고, 항공기가 빠르게 이착륙해야 한다는 압박이 존재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공항이 혼잡한 탓에 이번 사고 이전에도 여러 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해 이륙 허가를 받은 아메리칸 항공 비행기가 인근 활주로에 착륙 허가를 받은 킹 에어 비행기와 충돌할 뻔했다. 이 사건 두달 전에는 활주로에서 젯블루와 사우스웨스트 비행기가 충돌할 뻔한 사건이 있었다. FAA에 따르면 지난해 레이건 공항 인근에서 최소 8건의 근접 충돌 사고가 발생했다.

레이건 공항의 승객 수가 이미 한계치를 넘어선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레이건 공항은 연간 1500만명의 승객을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지만, 현재 2500만명 이상의 승객이 레이건 공항을 찾고 있다. 버지니아주 상원의원 팀 케인은 지난해 의회연설에서 레이건 공항이 ‘포화상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번 사고로 레이건 공항의 장거리 항공편 증편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현행 미 연방법은 1250마일(약 2000km) 이상 거리의 장거리 노선 운항을 제한하고 있지만, 미 의회는 재작년 장거리 노선 추가를 승인했다. 지난해 관련 예산이 의회를 통과하며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등을 오가는 다섯 편의 장거리 노선 추가도 확정됐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많은 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와 주를 위해 레이건 공항 직항 노선을 확보하기 위해 항공사들을 상대로 꾸준히 로비를 벌여왔다”면서 “이번 비극적인 사고 이후 워싱턴 지역 의원들은 레이건 공항과 주변 지역의 과도한 항공 교통량에 대한 논쟁을 다시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엠브리-리들 항공대에서 항공 교통 관제를 연구하는 마이클 맥코믹 교수는 공항의 복잡한 교통 패턴에 대한 안이한 태도와 야간 항공 관제사 인력 부족이 이번 사고의 원인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며 “이 사고는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던 안타까운 비극”이라고 말했다.